“의성 하면 마늘인데 마늘도 집도 다 탔습니더. 앞으로 우째 살란 말인지….”
30일 오후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김민수(51)·김역수(47)씨 형제가 시커먼 재만 남은 마늘밭을 보며 한숨 쉬고 있었다. 산불로 형제가 일군 마늘밭 1600㎡(약 500평)와 집 2채가 모두 불탔다. 민수씨는 “집 문서만 챙겨서 대피소로 피했다”며 “집에 돌아와 보니 소 두 마리만 남아 있더라”고 했다. 소 두 마리도 털이 검게 탔다.
의성군 단촌면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 김명선(58)씨는 “마늘밭도 엉망이 됐는데 외국인 근로자 7명도 대구로 피난 가 남편과 둘이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에선 지난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로 4만5000ha가 불타고, 이재민 3만4000여 명이 발생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주택 등 3600여 채와 논밭 1555ha, 농기계 1369대가 불탔다. 키우던 한우 13마리, 돼지 2만4452마리, 닭 5만 마리, 염소 38마리도 불에 타 죽었다.
‘영덕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 노물리 마을에선 불에 타 뼈대만 남은 배 12척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5일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해안을 덮치며 정박 중이던 배까지 불탄 것이다. 이 마을 배 30여 척 중 12척이 불에 탔다. 주택 228채 중 170채도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었다. 하중광(72) 어촌계장은 “12월부터 5월까지 대게 철인데 배가 불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울먹였다. 주민 정모씨는 “배가 산불에 타는 건 처음이라 기가 막힌다”며 “앞으로 뭘 먹고살지 막막하다”고 했다.
경주 이씨 집성촌인 안동 임하면 추목리 마을도 산불로 폐허가 돼 있었다. 주택은 지붕이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앙기와 경운기 등 농기계도 불타 있었다. 정경윤(62) 추목리 이장은 “추목리 90여 가구 중 80여 가구가 모두 불탔다”며 “전통 있던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군의 달기약수탕에도 산불이 덮쳤다. 콘크리트 지붕을 씌운 약수탕은 화마를 피했지만 주변 음식점 30곳 중 27곳이 불탔다. 경북도 관계자는 “피해가 너무 광범위해 돈으로 일일이 환산하기 불가능한 정도”라며 “앞으로 피해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판례 등에 따르면, 실화자를 잡더라도 실화자 개인에게 물릴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1억원 안팎 수준이다.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기업인 한전을 상대로 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14분의 1 수준인 27억원만 인정했다.
30일 현재 주불은 잡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게 산림 당국의 설명이다. 이날도 경북 현장에서 잇따라 잔불이 일어났다. 산림청 관계자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지만 주불을 잡고서도 일주일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기상청도 “당분간 전국이 건조한 가운데 바람이 강하게 불 것으로 보여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을 낸 실화(失火) 용의자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의성 안평면에서 산불을 낸 혐의로 성묘객 A(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아내, 딸과 함께 조부모의 산소에 들렀다가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딸은 “산소에 있는 나무가 잘 안 꺾여 라이터로 태우려다가 산불이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성 산불은 안계면 과수원에서도 발생했는데, 의성군 관계자는 “용의자인 과수원 주인이 잠적한 상태”라고 전했다. 산청군도 실화 용의자 조사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처음 불이 난 지역의 농장 주인은 참고인 조사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불이 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