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 개혁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며 주 52시간제 개편 작업에 착수하자 노동계와 야당이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고 노동 시간을 늘리려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 취지는 전체 근로 시간은 늘리지 않되, 상황에 따라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동 시간을 무한정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것(민주노총)” “아무 제한 없는 초(超)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겠다는 것(한국노총)”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노동자에게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 개악”이라며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주 92시간 근무 불가능
일각에서는 주 52시간제를 월 단위로 개편하면 한 주에 최대 92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24일 방송에 출연해, “노동자들한테 일하다 죽으라는 사망 선고”라며, “주 92시간 근무가 가능하냐”는 사회자 질문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현재의 주 52시간제는 주당 기본 근로 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정부는 ‘주당 12시간’으로 묶여 있는 연장근로 한도를 ‘월 52시간’ 등으로 바꾸자는 것인데 노동계는 이 52시간을 한 주에 다 쓰면 주 92시간(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근무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퇴근 후 출근까지 11시간 휴게 시간을 의무화한다는 정부 계획을 무시하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퇴근 후 출근까지 11시간 휴게 시간을 갖게 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13시간이다. 그나마도 현행 근로기준법상 4시간 일하면 30분 이상의 휴게 시간을 주도록 돼 있어서 13시간 회사에 있어도 근무시간은 11시간 30분을 넘길 수 없다. 또,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하루 이상의 휴일을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주 최대 근무 일수는 6일이다. 이렇게 하루 11시간 30분씩, 주 6일간 계속 일해도 주 69시간을 넘길 수 없다. 제도 개편 뒤 가능한 주당 최대 근로 시간은 92시간이 아닌 69시간인 것이다.
게다가 기업들도 임금이 비싼 연장근로·휴일근로를 무턱대고 쓰기 어렵다. 현행법상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는 통상 임금의 150%, 휴일연장근로는 200%를 지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월 단위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저임금 주장도 맞지 않아
‘저임금 근로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월 연장근로 시간 총량은 그대로이고, 근로자가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할 경우 받게 돼 있는 가산수당 규정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 주에 연장근로를 몰아서 하게 된다고 해서 임금이 떨어질 일은 없다.
근로자 입장에선 연장근로를 하면 급여가 늘어나게 된다. 현대자동차 등에서도 주말 특근은 평일 근무보다 더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오히려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 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됐을 때 중소기업 등에선 주문량이 몰리는데 연장근로 한도 때문에 근로자들이 야근이나 특근을 할 수 없어 월급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불만이 나왔다. 서울의 한 노무사는 “이전에는 주 52시간제 때문에 받지 못했던 연장근로 수당 등을 제도 개편 후에 더 받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편이 근로시간을 연장하거나 주 52시간제를 완전히 허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주 52시간을 넘겨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주의 연장근로를 당겨 쓸 수 있도록 일부 유연성을 주는 취지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의 틀 속에서 운영 방법을 현실에 맞게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