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국민노조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최저임금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해도 되는지 문제를 헌법재판소가 정식으로 심판하기로 했다. 지난달 보수 성향인 국민노동조합 등이 이 문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재가 받아들여 정식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헌재는 이 같은 내용 결정문을 국민노조에 지난달 31일 통보했다.

청구의 핵심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9620원으로 하고, 업종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올해 8월 5일 자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違憲) 소지가 있으니 취소해 달라’는 내용이다. 국민노조와 함께 경기도 광명에서 주방 기구 소매업을 하는 김모(68)씨가 청구에 동참했다. 김씨는 젊은 시절 봉제공장 여공(女工)으로 일하며 노조 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청구인들은 현행 최저임금 제도가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은 근로자 위원,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 각각 9명으로 이뤄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한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사 처벌 받는다.

청구인들은 “최저임금위 위원들은 모호하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선정됐다”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위임도 받지 않은 위원들이 범죄 구성 요건을 결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액수에 따라 형사처벌 기준이 생기는데 이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대표성이 없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따라 국민들 계약 체결·직업 선택의 자유도 과도하게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재산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어 최저임금 지역별·업종별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제도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는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청구인 중 하나인 김씨는 “한 달에 몇 억을 버는 사업주와 한 달을 죽어라 일을 해도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버는 소상공인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사실 최저임금제는 이미 몇 차례 헌법소원 심판을 받은 바 있다. 그때마다 합헌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최저임금을 지역별·업종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이른바 ‘구분 적용’ 문제가 헌재 심판을 받게 된 건 처음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019년 최저임금 인상액이 과도하다는 헌법소원에 대한 심판 결정에서 “업종·지역·숙련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게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아도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 보기도 어렵다”며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향후 다양한 방식 이해관계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요 선진국 상당수는 산업이나 지역, 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게 하는 곳이 많다. 일본은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업종별로 다르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최저임금법 4조가 ‘최저임금을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이에 대해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임금 지불 능력이 낮은 업종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찬성하지만, 노동계는 “근로자 임금 최저 수준을 보장한다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자,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심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연구 용역을 하라고 권고했고, 고용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쪽이 많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법에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최저임금위 결정과 고용부 장관 고시라고 적시해 놨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업종별 구분 적용도 평등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법이 정부 판단에 맡긴 것이라 평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표 변호사는 “법률에서 구분 적용을 해야 할 의무가 도출되는 것이 아닌 데다, 구분 적용을 안 한다고 차별이 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반면,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청구를 각하하지 않고 본안 판단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건 위헌 여부를 한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