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가 국내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고용허가제가 도입 19년 만에 개편된다. 외국인 근로자가 10년 이상 체류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되고,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도 확대된다. 내년부터 화물 상·하차 직종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되고, 가사 도우미나 베이비시터 등의 직종에 대한 외국인 고용도 검토된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출신 동포는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 취업이 허용된다.
고용노동부는 29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고용부는 “고용허가제 도입 후 산업 현장과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고, 실제 인력 수급 상황에 맞게 제도를 개편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고용허가제는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 도입된 제도다. 제조업·농축산업·어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만 외국인 고용이 허용됐고, 정부가 매년 업종별로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수를 정한 뒤 일부 국가와의 협약을 통해 해당 국가의 근로자를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외국인 근로자는 최장 4년 10개월까지만 국내에 체류할 수 있었고, 기간이 다 되면 반드시 출국해야 했다. 일부 근로자에게는 한 차례 재입국 기회가 주어졌으나, 이 경우에도 출국한 지 6개월이 지나야 재입국이 가능했고 다시 4년 10개월이 지나면 영구 출국해야 했다.
고용부는 먼저 ‘장기 근속 특례’를 도입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숙련이 쌓이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된 근로자에 대해 중도 출국 및 재입국 없이 국내에 계속 머무르며 일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특례를 받은 근로자는 최장 10년간 연속 체류가 가능해진다. 고용부는 관계 부처 및 노·사의 의견을 수렴해 연속 체류 가능 기간을 10년보다 더 늘려주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또 제조업, 농축산업 등 ‘업종’ 단위로 고용 허가 규모를 정하던 기존 방식을 바꿔, 이보다 더 세부적인 ‘직종’ 단위로도 고용 허가를 내기로 했다. 인력이 부족한 직종에 대해 맞춤식으로 외국인 고용을 허용해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화물 상·하차 직종에 대한 외국인 고용이 허용된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가 해당 근로자를 다른 사업장에 파견보낼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농산물 수확, 농·수산물 가공 등 인력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일자리에 외국인 근로자를 파견 근무시켜 인력난을 해소해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사 도우미나 베이비시터 등 일부 서비스업 직종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공인된 기관이 한국어 능력이 검증된 외국인을 고용해두고 있다가, 각 가정에 파견해 가사·돌봄 업무를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국내에 계속 머무르면서 외국인 근로자로 신분을 전환해 취업할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국내에서 학위 과정을 마치고 전문인력(E-7) 비자를 받아 취업하지 못한 경우에는 출국해야 했으나, 이들에게 비전문인력(E-9) 비자를 받을 기회를 줘 국내에 취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만, 이런 기회는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를 송출하기로 협정을 한 16국 출신 유학생에게로 제한된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6국 출신의 동포, 즉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부여되던 방문취업(H-2) 비자의 취업 기회도 대폭 확대한다. 기존에는 정부가 허용한 업종에만 취업이 가능했지만, 내년부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관리업, 정보서비스업, 금융업, 연구개발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제한 없이 취업할 수 있다.
국내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외국인 근로자를 빠르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시행된다. 제조업체의 경우 기존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14일간 내국인 근로자를 구인해야 했다. 고용부는 이 기간을 7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모든 개편안이 내년에 곧바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 근속 특례 도입과 외국인 근로자 파견 허용, 내국인 근로자 구인 의무 기간 단축 등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고용부는 “이번 개편 방안 중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하고, 법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노·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및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내년 상반기에 개정안을 발의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