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야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 처리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은 근로자가 교섭 요구를 할 수 있는 사용자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고, 개념 규정조차 모호해 수많은 법적 분쟁을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쟁의가 ‘노조와 사용자 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해 발생한 분쟁 상태’라는 현행 조항에서 ‘결정’을 뺀 것도 논란거리다. 지금까지는 임금 협상 등 미래 근로조건에 대한 쟁의가 허용됐지만, 개정안이 확정되면 현재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쟁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쟁의 관련 분쟁이 만연하고, 대법원까지 가야 적법 여부에 대한 결판이 나는 ‘노동의 사법화’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6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은 법치주의와 정면충돌하는 입법으로, 결국은 노사 갈등 비용이 커질 것”이라며 “기업이 투자를 안 하고 힘에 의존한 노사 관계로 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해쳐 노사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국정 과제로 삼을 만큼 중시했지만 위헌성, 다른 법률과의 충돌 우려 등으로 결국 추진하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처리에 소극적이었지만,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로 처리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당일 땐 못 하다가 야당이 되니 강행한다’는 것이다.
사용자에 대한 정의가 현행 ‘근로자와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서 개정안대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되면, 삼성전자 협력 업체 노조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자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파업도 가능해진다. 원청 입장에선 수많은 하청 노조들에서 단체교섭 요구를 받게 되고 이를 타결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하청 노조들 입장에선 일단 원청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를 한 뒤, 원청 회사가 교섭을 거부하면, 지방노동위→중앙노동위→1심→2심→대법원 판결까지 사실상 ‘5심’에 걸쳐 소송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또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가담자 각각의 귀책 사유나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다르게 소송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총피해액이 400억원이면 파업을 주도한 A 노조원은 10억원, 단순 참가한 B 노조원은 100만원이라는 식으로 청구액을 쪼개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파업에 누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는 결국 재판 과정에서 가려져야 하는데, 청구 단계부터 이를 다 구분하라는 건 노동자들의 불법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법은 총 96조항으로 이뤄져 있고 각종 노사 관계 제도가 총망라돼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개정안은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정의만 달랑 바꿔 이 조항의 영향을 받게 되는 다른 조항들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경우 회사가 어떤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지 정해 놓고 있는데, 하청 노조에까지 단체교섭권이 생기면 하청 노조들과 원청 노조 중 어떤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지부터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청 노조가 파업하면 원청 회사는 대체 근로자를 투입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규정돼 있지 않다. 15일 환노위 소위 논의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은 “충돌되는 법 조항은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야당은 “나중에 또 입법하라”며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정식 장관은 “윤석열 정부 이후 (파업으로 인한) 노동 손실 일수가 과거 정부 평균 대비 70% 감축됐고,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노사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개정안 통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려된다”며 “우리나라는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을 하나만 빼놓고 인준했고, 노동 관련 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지 않으니 (현행) 법 규정 아래서 노동운동을 하면 못 할 게 없다”고 했다. 또 이 장관은 “노란봉투법은 전체 노동자를 반영한 법으로 볼 수 없다”며 “피해는 미래 세대와 약자, 노조 없는 약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환노위 여당 의원들은 법안 통과를 막겠다며 16일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었지만, 안건조정위 위원 6명 중 4명이 야당 소속이라 법 통과를 막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