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6)씨는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작년 3월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한지 11개월이 된 올해 1월, 매니저는 “퇴사하고 한 달 쉰 다음 재입사해야 한다. 이게 관행”이라고 했다. A씨는 “매장 요구를 받아주면 한 달 치 알바비가 끊겨 어쩔 수 없이 다른 아르바이트를 새로 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작년 2월 ‘1년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유치원 교사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재계약해주겠다”던 원장이 이달 초 말을 바꿔 “아이들 수가 줄었으니 권고 사직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B씨는 이달 말이 되면 근무 기간 1년을 채울 예정이었다. B씨는 “권고사직 이야기를 꺼낸 뒤부터 원장이 눈치를 주거나 교사 2명이 보던 연장반 아이를 혼자 돌보게 해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고용 시장에서 ‘11개월 꼼수 근로 계약’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현행법은 주당 15시간 이상씩, 1년 이상 일한 근로자가 일을 그만둘 때에는 사업주가 퇴직금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 미만이거나, 근무 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면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A, B씨가 근무 기간 1년을 앞두고 일을 그만둬야했던 것도 결국 고용주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C(23)씨가 부산의 한 학원에서 작년 8월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원장은 두 장의 근로계약서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하나는 계약기간이 11개월로 돼 있었고, 다른 하나는 주당 근로시간이 14시간 30분으로 적혀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쓸 때부터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장치를 한 것이다. 원장은 “톡 까놓고 말하겠다. 언제까지 일 할 거냐. 나는 퇴직금 주기 아깝다”고 했다. 노무법인 가연의 권오병 노무사는 “11개월차 해고나 쪼개기 계약 등 편법을 쓰는 경우를 한 달에 8~10건씩은 상담한다”며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조직에 융화가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11개월 차에 해고하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구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권고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근무기간 만 1년이 될 때까지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권고 사직이 아닌 강제 해고를 했을 경우에는 ‘부당해고’ 여부를 노동위원회에서 다퉈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경우 직원 수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적용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실제 애견 미용샵에서 일했던 D(34)씨는 11개월 18일을 일했는데 “가게 사정이 어렵다”며 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애견샵이 5인 미만 사업장이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4주 이상~1년 미만 근무 근로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이 2021년 5월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와중이라 사업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