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원내에 진입한 진보당의 공동대표 장지화(여·53)씨는 지난 11개월간 수도권 한 아파트 공사장에 ‘현장 팀장’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노임 3700여 만원을 받아 갔다. 민노총 건설노조 소속인 장 대표는, 해당 기간에 집회·시위에 나가거나 외국에 있었던 시기에도 마치 현장에 출근해 일을 한 것처럼 처리해 건설사에서 일당을 타 갔다. 장 대표 외에도 내란 선동으로 강제 해산된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민노총 건설노조를 통해 대거 건설 현장에 취직했는데, 상당수는 실제 일을 하지 않은 날에도 일당을 받아 갔다.
18일 본지가 입수한 건설노조 내부 자료와 건설 현장 일당 지급 기록 등에 따르면, 장지화 대표는 작년 3월 경기도 A시의 한 대단지 아파트 공사장에 취업, 올해 1월까지 11개월간 일당 총 3755만원을 타 갔다. 건설 현장은 출근한 날짜마다 급료를 지급하는 일당제(日當制)다.
장 대표의 현장 보직은 ‘구조물 해체팀장’. 건장한 남성 10여 명을 이끌고 배척과 망치 등을 이용해 거푸집 등을 해체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장 대표가 ‘공사장에서 일했다’는 2022년 3월~올해 1월, 그는 두 번의 선거에 출마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당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떨어졌고, 8월 31일엔 진보당 하위 정당인 여성엄마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에 따라 진보당 공동대표 자격을 얻었다.
장 대표는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열린 집회·시위·행사에도 수시로 참가했다. 작년 9월 20일 서울 중구 신당역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9월 27일엔 성남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10월 17일엔 서울 용산, 11월 8일엔 여의도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 날에도 하도급 건설사는 그의 통장으로 일당을 꼬박꼬박 송금했다.
특히 장 대표는 지난해 10월 3~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다녀왔다. 출국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걸어 놓고 “국제건설목공노련 세계총회에 다녀오겠다”고 스스로 밝혔다. 하지만 한국을 비운 동안에도 현장 출근부에는 주말 포함 이틀을 빼고는 모두 출근한 것으로 적혔다.
장 대표는 “2020년부터 여러 현장에서 건설 일을 했다”며 “해체팀은 기능보다는 전체적인 팀 운영이라든가 다양한 경험을 보기 때문에 뽑힌 것”이라고 말했다. ‘출근을 안 하고도 일당을 타 간 경위’에 대해서는 “질문이 좀 불편하다. 그만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장씨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중퇴한 뒤, 성남여성회 수정지부 설립 등 시민 단체 활동과 정치 활동에 평생을 쏟은 것으로 이력서엔 나온다.
장 대표를 채용한 건설사는 출근도 하지 않은 그에게 일당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로 활동하면서 건설 현장에 취업하고, 출근하지 않은 날도 일당을 받은 운동권 인사는 장 대표만이 아니다.
통진당 출신 편모씨는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 공사장에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간 총 1538만원을 받았다. 편씨 역시 ‘윤석열 규탄 대회’ ‘이태원 참사 49재’ 등 각종 시위 현장에 간 날이나 화물연대 파업 연대 투쟁에 동참한 날까지 건설사에서 일당을 받아 갔다.
편씨의 직함은 ‘형틀팀장’. 편씨는 통진당 원내행정 기획실장, 민중연합당 연합사무총장 등의 직함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건설현장 팀장이 됐다. 그는 현재 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동남지대 부지대장을 맡고 있다.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와 함께 민노총 건설노조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경기도건설지부도 상황은 비슷했다. 통진당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김모씨는 장지화 대표와 같은 기간 같은 현장에서 총 5350만원을 타 갔다. 김씨도 현장에 수시로 출근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았지만 일당을 받아 갔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내란 선동 사건 공범도 건설노조 간부로 있었다. 해당 사건으로 구속돼 2017년 11월 출소한 전 통진당원 이모씨는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고양지대장’이다. 그는 2022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경기도 2곳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형틀팀장’으로 총 6832만원을 받았다.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구속됐다가 2018년 9월 출소한 김모(통진당 경기도당 위원장)씨는 출소 후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교육위원장’으로 변신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노조 관계자는 “망치질도 제대로 못 하는 먹물 출신 초보 인부는 ‘양성공’ 일비인 17만원이면 되는데, 낙하산으로 날아와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사상 교육이나 하며 팀장 일당 29만원을 받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이런 상황에 진짜 인부들이 굉장히 낙담한다”고 말했다.
이 정치인들이 건설 현장에서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건 통진당·경기동부연합 인맥의 힘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 건설 현장을 남북으로 나눠 관리하는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와 경기도건설지부의 수장이 모두 경기동부 출신이다. 지부장은 노조가 건설사를 압박해 확보한 일자리의 팀장 자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다. 그 아래 팀장들은 직접 시위를 나가거나, 인부들을 동원한다. 경기동부는 1980~90년대 주사파 운동권 핵심 세력으로서 민노총 건설노조에 스며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통진당과 후신 격인 진보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 ‘건설현장에 일은 안 하고 돈만 받아가는 건설노조 팀장이 있다’는 취지의 원희룡 국토장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다. 원 장관은 “모두가 땀 흘려 일하는 동안 팀장은 망치 한 번 잡지 않고 일당을 챙긴다”며 “이러한 돈은 현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진짜 근로자에게 돌아갈 몫이다. 결국 이들이 챙겨간 돈이 건설원가에 반영돼 국민이 모두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 안하는 팀장과 반장을 근원이나 배후까지 뿌리 뽑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