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A사는 단순 업무를 하는 서무 직원을 계약 기간 2년의 기간제로 채용해 쓰고 있다. 정규직보다 임금은 적지만 업무 강도가 낮아 해당 직원 가운데 2년보다 더 길게 일하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A사는 2년이 지나면 이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야 한다. 현행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기간제 직원 중엔 성실하고 업무 능력도 좋은 사람이 많은데 2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내보내고 새 직원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의 표면 처리 업체 B사도 경리 등 4명을 최근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숙련도가 중요한 생산직은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지만, 단순 업무직은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다. B사 대표는 “3년 차 생산직 직원들도 인건비가 부담돼 올해 임금을 동결해야 하는 지경이라 단순 업무는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2년 뒤 다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정부는 5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최장 10년 가까이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기로 했다. 그러면서 2년으로 묶인 내국인 기간제(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16년째 그대로 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 관련 법을 만들었지만 정작 현실에선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에 방해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 중 기간제법은 2007년 7월 시행됐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파견법은 1998년 도입됐는데 파견은 원칙적으로 1년만 하되, 당사자와 합의하면 1년을 연장해 최장 2년까지 허용하게 했다. 현재 경비원·사무지원 등 32업종에 한해 파견이 허용된다.
두 법의 취지는 모두 비정규직 보호였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간제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2년마다 직원을 새로 뽑는 게 현실이다. 작년 기간제 계약 만료자 중 정규직 전환 비율은 6.3%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0)’를 내걸었다. 그러나 기간제 근로자 숫자는 2015년 287만2000명에서 지난해 468만9000명까지 늘었다. 파견직 근로자 숫자도 매년 20만명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도 비정규직 실상과 맞닿아 있다. 현재 노동시장은 안정성과 임금이 높은 정규직(1차) 시장과, 상대적으로 낮은 비정규직(2차) 시장으로 쪼개져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평균 월급은 188만1000원으로 정규직 평균(348만원)의 54%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은 임금도 낮은데, 2년 이상 근무도 어려워지면서 노동 양극화가 더 심화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기간제 고용이 2년에 묶이면서 단순 일자리에선 내국인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더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와 내국인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이 겹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내국인 비정규직을 2년 이상 쓸 수 없는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하려는 업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비정규직 법을 고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15년 당시 여당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다. 노동계는 기간제 고용 기한을 늘리는 것에 대해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경제학자 출신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고용 기간을 2년으로 묶은 기간제법은 법 취지대로 비정규직을 줄이지 못한 실패한 입법”이라고 했다. 조용만 건국대 교수는 “기간제 고용 기한을 늘리는 대신 정규직과 임금 등에서 차별을 줄이는 보완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