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서울본부, 관련 노조들이 20~30년 이상 사실상 공짜 사무실로 쓰던 노동자복지관 문제가 결국 소송으로 번졌다. 계약 종료 등에 따라 노조들이 복지관 내 사무실을 빼야 하지만, 상당수 노조가 아직도 사무실을 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불법 점유에 해당한다.

1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작년 11월 말 노조들을 상대로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복지관 내부 곳곳엔 법원이 작성한 ‘부동산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고시문까지 붙어 있다.

두 노동자복지관은 노동 상담·문화 활동·생활 체육 등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서울시 소유의 건물이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7가의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은 한노총 서울본부가 1992년부터 31년간, 현재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강북노동자복지관’은 민노총 서울본부가 2002년부터 21년간 독점 위탁 운영했다.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시설이라는 본래 취지보다는 양대노총 관련 노조들의 사무실로 주로 쓰였다. 노조들은 사무실 임차료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시로부터 위탁 운영비와 관리비, 인건비 등을 지원 받았다. 여기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서울시는 작년 7월 공개 입찰을 진행했다. 입찰에선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은 기존의 한노총 서울본부가, 강북노동자복지관은 재단법인 피플이 위탁 운영자로 선정됐다. 새 위탁 운영 계약과 서울시의 새 지침에 따라 한노총 서울본부를 제외한 다른 노조들은 모두 복지관에서 사무실을 빼야한다.

강북노동자복지관은 12개 노동단체 중 6곳이 아직 사무실을 빼지 않았다. 민노총 서울본부,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이주노동자노조, 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 전국건설기업노조 서울지부,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등이다.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은 8개 노조 중 4곳이 사무실을 철수하지 않았다. 전국택시노련 서울본부, 전국식품노련 서울본부, 의류노련 서울본부, 한국민주제약노조 등이다.

2022년 11월 촬영된 강북 노동자 복지관 모습(위 사진). 민노총 서울지역본부 등의 간판이 달려 있다. 지난해 10월 촬영된 사진에는 민노총 간판이 모두 제거돼 있다. 서울시는 "복지관 외벽에 시의 승인 없이 각 노총이 서울지역본부 간판을 설치해 일반 근로자를 위한 복지관이라기보다 노조 건물로 인식돼 왔다"고 했다. /고운호·이태경 기자

아직 사무실을 빼지 않은 노조들은 서울시에 “갈 곳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고 한다. 민노총은 새 사무실을 구하기 위한 모금 운동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명도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도 노조들이 사무실을 철수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자복지관은 당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1990년대부터 노동자들 복지나 생활 안정을 위해 지은 것이다. 당시만해도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복지시설이 전무했던 당시와 지금 상황이 다르고, 애초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있다.

경기도 수원의 ‘수원근로자복지관’은 총 5층 건물인데 1층은 약국, 2~3층은 병원이 입주해있다. 한노총 수원본부가 위탁 운영중인데, 여기에서 받은 임차료로 요리교실, 정보화교실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부산은 한노총 부산본부가 노동자복지관을 위탁 운영 중인데 예식장과 직업전문학교, 노조 사무실 11개가 입주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지관이 애초 취지대로 운영되도록 노조 사무실을 철수시킨 것은 광역지자체 중 우리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