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머리맡을 정리하는 가사 도우미의 모습. /조선일보 DB

국제 노동자 단체인 아시아 이주노동자 포럼(MFA)은 최근 “한국에 도입될 필리핀 가사 근로자(가사·육아 도우미)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두고 한국과 필리핀 간 시각차가 존재한다”며 “관련 규정도 모호해 혼란이 일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양국 정부는 9월 필리핀 가사 근로자 도입을 위해 지난달 현지 선발 절차를 시작했지만 핵심인 업무 범위 등이 명확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는 필리핀 가사 근로자가 돌봄 관련 국가 자격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영어 면접, 한국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이 선발되는 것이라 업무 범위를 두고 충돌이 거셀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양국은 그동안 가사 근로자의 업무 범위를 놓고 수개월간 대립해오다가 모집 내용에 합의했다. 필리핀 정부는 가사근로자가 육아만 하길 원했지만, 우리 정부는 육아와 관련된 가사까지 맡기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는 등 ‘순수한’ 아이 돌봄에 더해, 현실의 가정에서는 아이의 옷을 빨래하고 산모를 위해 식사를 제공하거나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위해 청소를 하는 등 다양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은 시행 공고문에 ‘(육아와 관련해) 보조적으로 간단한 집안일을 도울 수 있다’고 했지만, 의무 조항은 아니어서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고문의 ‘육아’ 관련 조항에는 계약 관계에서 의무를 뜻하는 영어 조동사 ‘셸(shall)’이 쓰였지만, ‘가벼운 집안일’을 언급하는 조항엔 할 수 있다는 뜻의 ‘메이(may)’가 사용됐다. 한 현지 전문가는 “최근 필리핀에선 돌봄 업계 복지 증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돌봄 제공자 역시 업무에 자부심이 있어 집안일은 꺼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경우 국내 이용자가 대처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비용을 두고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양국은 가사 근로자에게 주당 최소 30시간 근로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을 적용할 경우 최소 월 154만원가량, 주 40시간 일하면 206만원이다. 필리핀 가사 근로자를 먼저 도입한 홍콩 등은 월 100만원가량을 지급하는데 이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