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에서 직원들이 현대차의 경형 SUV 캐스퍼를 만들고 있다. GGM은 기업과 지자체가 협약을 맺으면 정부가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1호 기업이다. /연합뉴스

지난 2020년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군산, 대구, 부산 등 전국 8곳에서 시행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이 총체적 부실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이 사업은 기업과 지자체가 ‘노사민정 협약’을 맺으면 정부가 이를 심의해 보조금, 세금 감면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당시 정부는 지역마다 수천억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수백·수천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자리 목표치를 달성한 곳은 거의 없고,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만 타고 기업이 사업을 포기하는 문제 등도 발생했다.

27일 본지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상생형 일자리별 고용 실적’ 자료에 따르면, 8곳 중 목표치를 달성한 곳은 익산뿐이었다. 익산은 일자리 창출 목표치(345개)를 뛰어넘은 360개를 만들었다. 군산형 일자리 사업은 2025년까지 일자리 1714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제 만들어진 일자리는 372개에 불과했다. 580개를 만든다던 횡성은 60개에 그쳤고, 밀양에서도 목표치 505개를 밑도는 172개만 만들어졌다. 2023년까지 일자리 510개를 만든다는 부산형 일자리 사업도 현재까지 125개를 만드는 데 그쳤다. 이 목표치는 정부나 지자체가 보도 자료를 통해 스스로 밝혔던 숫자다.

그래픽=이진영

사업의 실패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다. 전국 8개 지역형 일자리 사업 중 7개가 자동차, 전기차 관련 사업에 치중된 데다, 참여 기업에 대한 진단 등 기초 작업부터 부실했다는 것이다. 실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으로 전기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자, 대부분 사업체가 동시에 휘청이며 고용을 줄이고 있다.

참여 기업 중에는 사업 취지에 안 맞는 행태를 보인 경우가 많다. 군산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자동차 부품 업체 명신은 애초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300억원 정도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돌연 전기차 제조업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100억원가량은 반납하고 기존 부품 사업만 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업 신청 땐 813명을 고용하기로 했는데, 실제론 194명만 고용했다. 세금 지원을 받아 마련한 일부 부지도 매각할 계획이다. 땅값은 매입 때보다 수배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군산형 일자리 사업체인 에디슨모터스는 정부 지원을 받은 기간 ‘주가 조작’을 벌인 게 적발됐고 재판에도 넘겨졌다. 이들은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자로 선정된 후인 2021년 5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허위 공시 등을 통해 관계사 주가를 띄우는 수법을 썼다. 사실상 정부가 이 사업들에 보증을 서주고 사기에 이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형 일자리에 참여한 자동차 부품사 코렌스EM은 모회사 코렌스가 정부 출연금을 임의로 사용했던 전력 탓에 선정 때부터 논란이 됐다. 이들은 이번에도 정부와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받았던 보조금 77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코렌스EM이 BMW와 400만대 부품 계약을 맺었다고 했지만, 이 계약은 일자리 사업자로 선정되기 전 이미 취소된 상태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금액은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직접 지원 금액으로 분류되는 지역투자촉진보조금, 수요 맞춤 지원 사업 등 예산뿐 아니라 공동근로복지기금, 지방세 감면, 전기차 클러스터 전문 인력 양성 등 갖가지 명목의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군산시의회 한경봉 의원에 따르면, 군산형 일자리 사업에만 3829억원이 투입됐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 기획에 참여했던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보조금을 주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순진한 발상을 한 것”이라며 “자기 지역에 투자를 늘리려는 정치권이 합세하면서 사업이 부실화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