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반발해 경북대병원 의과대학 교수들이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에 위치한 경북대병원 본원 1층 복도에 검은 마스크를 쓴 교수 30여 명이 피켓을 들고 섰다. ‘코로나 시국에 밀어붙이는 4대 악법’을 반대한다 는 취지의 피켓이었다. 1시간 뒤 보건복지부 관계자 3명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및 전임의(레지던트를 마친 펠로)들의 진료 현장 복귀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자 교수들은 조사단을 따라다니며 침묵 시위를 이어갔다.

보건 당국이 지난 28일 수도권 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 등 10명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이날 수도권 이외 지역 병원으로 현장조사를 나가 파업 중인 전공의들에 대한 추가 고발 준비에 들어가자 교수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31일 “비(非)수도권 병원 응급실·중환자실 10곳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근무 중이 아닌 전공의 등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의사가 다음 조사에서 또다시 근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고발될 수 있다. 전국전임의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대구가톨릭대 병원에서 18명,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32명의 전공의가 업무개시명령을 받았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이라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복지부 직원들이 이날 현장조사를 나간 계명대 동산병원에서도, 영남대병원에서도 교수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침묵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날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을 포함한 서울대병원 전임의 448명 중 407명(91%)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전공의·전임의들의 집단 사표 제출 움직임이 현실화됐고, 앞서 전공의 1명이 고발된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들은 “전원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진은 오는 7일 하루 동안 응급·중환자 등 필수 진료를 제외한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한의학회 “군사정권 때도 못 본 풍경”

전공의 10명에 대한 고발 조치 이후 의료계 전반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188개 의학 학술단체를 총괄하는 대한의학회가 이날 성명을 내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 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공무원들이 들어와 전공의를 겁박하는 행위는 군사정권 때도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에 이어 이날도 복지부가 병원 현장조사를 나가 전공의들의 진료 복귀 여부를 확인하는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대한의학회는 이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인 이들(전공의)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 않는다면 188개 의학 학술단체는 한마음으로 국민에게 정부와 여당의 오만을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 “전원 사직” “진료 중단” 집단 행동 본격화

대학병원 전공의·전임의들에 이어 교수들의 집단 행동도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앞서 밤새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고 나온 전공의 1명이 고발된 것으로 알려진 중앙대병원 신경외과에서는 교수 9명 전원이 성명을 내고 “정부 정책이 철회되고 원점에서 재논의됨과 동시에 부당한 고발이 취소되는 순간까지 전공의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진은 이날 “오는 7일 하루 동안 정부의 전공의 업무개시명령 등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필수 진료를 제외하고는)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전공의 1명이 경찰에 고발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들도 이날 “전공의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우리 교수 일동은 사직을 포함한 모든 단체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의학과 봉직의(동네 병·의원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의사)협의회도 “전공의들에 대한 고발 철회가 없다면 7일 의사협회 총파업 때 단체 행동의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전공의 총 953명 중 895명(93.9%), 전임의 281명 중 247명(87.9%)이 집단 사직서 제출에 참여했다.

◇출산 휴가 중인 전공의에 진료 복귀 명령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지난 7월 이후 출산 휴가 중인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지난 28일 복지부의 진료 현장 복귀 명령(업무개시명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료 전공의 150여 명은 31일 오전 “이대목동병원 전공의 전원은 젊은 의사 단체행동에 참여해 진료를 중단한 의료인으로 업무개시명령 대상에 해당한다”며 “행정명령을 (전공의) 전원에게 발동해주실 것을 복지부에 요청드린다”고 항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장조사 첫날 조사관이 병원 측에 휴가자 명단을 요청했는데 받지 못했다”며 “조사 둘째 날(31일) 부랴부랴 휴가자 명단을 제출받고 명령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