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채정호 교수 제공

지난 6월 26일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사이트에 34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의 정보가 올라왔다. 채정호(59) 가톨릭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였다. ‘디지털교도소‘는 채 교수가 텔레그램 ‘n번방‘에서 성 착취물을 구매하려 했다며 텔레그램 대화 캡처 화면과 함께 그의 전화번호 등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그때부터 채 교수는 하루에 100통이 넘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 시달려야 했다. ‘죽어라’ ‘네가 인간이냐‘는 폭언을 담은 문자가 쏟아졌고, 화상 강의를 하는 도중에도 전화가 와 강의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전화 벨은 새벽에도 멈추지 않고 울렸다.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에 이메일을 보내 “올라온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공개된 정보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우리가 자체 검증 결과 사실이 맞다”며 “신상 정보를 내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디지털교도소'에 신상 정보가 공개된 채정호 교수가 받은 협박 문자./채정호 교수 제공

결국 그는 경찰에 ‘디지털교도소’를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텔레그램 대화 캡처 화면이 합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수사한 대구지방경찰청은 “채 교수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구매하려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현재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추적하고 있다.

채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환자와의 신뢰와 유대 관계를 형성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직업인데,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의사로서 자신의 신뢰성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나에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환자가 ‘교수님 덕분에 우울증에서 회복해 잘 살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그런 행동을 했다니 가슴이 아프고 다시 우울해진다. 이제 누굴 믿어야 하느냐‘는 연락을 했다”며 “내 가슴도 찢어질 듯 아픈 순간이었다”고 했다.

진료 예약을 했던 환자들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에게 강의를 의뢰했던 학회가 강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채 교수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겐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들이 알아줄 수 있지만, 4000명 가까운 병원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일일이 해명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트라우마를 전문으로 하는 동료 전문의들의 도움을 받아 하 루하루 버텼다”고 했다.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올라왔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소재 명문대생 사건을 보며 “그 학생의 사정은 모르지만,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지 공감됐다”며 “정신과 전문의인 나도 매일 심장이 빨리 뛰고 불안했는데, 젊은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고 했다.

채 교수는 가짜 캡처 사진을 만들고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디지털교도소도 문제지만, 허위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퍼나르는 사람들의 의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 교수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죽으라’고 협박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 행위”라며 “사람들이 익명성에 숨어 그런 범죄에 가담하지 않도록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