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회고록에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30일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 전 전 대통령 사건 선고공판에서 “목격자 8명의 진술을 믿을 수 있고, 객관적 정황도 피해자 진술에 부합한다”며 “탄약관리 하사의 증언과 전교사가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분석 교훈집 내용 등을 고려하면 1980년 5월 21일 500MD 헬기가 사격을 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지위와 5·18 당시 행위, 이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미필적으로나마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라고 인식하면서 고의로 집필한 것이 인정된다”며 “피고인의 표현의 자유가 사자인 피해자의 표현의 자유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 피고인의 행위는 법질서 행위상 위법하다고 판단된다.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므로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장은 “5·18기간 헬기 사격 유무가 중요한 쟁점이라는 점을 알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고록을 출간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성찰이나 사과도 없고 용서도 받지 못했다”며 징역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다만, 비난 가능성이 크지만 5·18 자체에 대한 재판이 아니고 사자명예훼손 사건인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고해 형 집행을 유예하면서 5·18에 대한 폄훼를 못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서 청각보조장치(헤드셋)를 쓰고 재판에 임했다. 성명과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장 질문에 각각 “맞습니다”라고 비교적 분명한 어조로 답변했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가 길어지는 것으로 고려해 앉아서 경청하도록 배려했다. 전씨는 공소사실이 낭독되기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제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를 한쪽으로 꺾어 졸다가, 잠깐 잠에서 깨 고개를 바로 들기도 했지만, 다시 잠에 빠져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졸기도 했다.
앞서 이날 오후 12시 27분쯤 전 전 대통령은 검은 승용차를 타고 7개월 만에 광주지법 법정동 앞에 모습을 드러했다. 차량을 향해 사죄를 촉구하는 시민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전씨는 벗었던 중절모를 다시 착용했고, 수행원과 법정 경위·경찰에 둘러싸여 법정동으로 들어갔다. 부인 이순자씨가 뒤를 따랐다.
취재진이 ‘아직도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왜 사죄하지 않습니까’,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라며 질문했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42분쯤 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떠나 승용차 편으로 광주로 향했다. 그는 차에 오르기 전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친 유튜버들을 노려보며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5월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광주지법 앞에 모여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자 “전두환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날 판결에 대해 고소인측 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법원 판결로 인정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상식과 역사적 정의를 확인한 사필귀정의 판결”이라며 “다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형량은 아쉽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지난 2018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