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인 A군은 요즘 친구들이 아무도 자신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아 우울하다.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 친구를 만날 곳이 카톡방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A군만 이야기할 뿐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친구가 “사실 네가 없는 카톡방이 있다”며 대화 내역을 보여줬다. 친구들은 카톡방에서 A군 얼굴을 우스꽝스러운 동물과 합성한 사진을 공유하거나 A군이 ‘더럽다’고 욕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사이버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때리거나 돈을 빼앗는 물리적인 방식에서 온라인 공간에서의 괴롭힘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A군 사례 같은 단체 채팅방에서의 따돌림이 가장 흔하다. 피해 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괴롭힘도 잦다. 고등학교 1학년인 B양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가 남고로 진학한 C군이 메신저로 친구들과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평가하는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얼굴은 좀 고쳐야 될 듯’ ‘B 엉덩이는 사과 엉덩이’ 등이었다. B양은 C군을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했고 C군은 ‘서면 사과’ 처분을 받았다.

/그래픽=박상훈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소셜미디어 ‘에스크’(Asked)가 괴롭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에스크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익명으로 질문을 받고 답장을 하는 소셜미디어 앱이다. 질문과 답변은 다른 사람에게도 공개된다. ‘오늘 학원 가?’라는 일상적인 질문부터 ‘너 정말 예쁘다’는 칭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모든 대화를 에스크로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익명으로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욕설이나 성희롱성 글을 남기기도 한다. 서울 소재 여중 교사 엄모(30)씨는 “반 아이들 절반 이상이 에스크를 사용한다”며 “짓궂은 질문을 받더라도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어쩔 수 없이 앱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 수업의 영향으로 사이버 학교 폭력은 뚜렷이 늘어났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 폭력, 스토킹, 금품 갈취, 강요 등 물리적인 피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에 비해 줄었다. 반면 사이버 폭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8.9%에서 12.3%로 늘어나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에 이어 셋째를 차지했다. 저학년일수록 사이버 폭력 발생 빈도가 잦았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초등학생의 사이버 폭력 피해 경험 비율이 중·고등학생보다 높았다.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을 당해봤다’고 답한 초등학생 비율은 2019년 18.8%에서 지난해 25.8%로 대폭 늘었다. 중학생은 18.1%, 고등학생은 14.7%였다.

사이버 폭력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처가 남는 신체적 폭력과 달리 부모나 교사가 알아차리기 어렵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정모(26)씨는 “사이버 폭력은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이상 교사가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원래 입이 거친 학생들도 있다 보니 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건지 괴롭힘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많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공간에서 겪은 폭력은 신체적 폭력 못지않은 충격을 준다. 심각한 경우 피해 학생은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른다. 친구로부터 ‘이 글 안 보면 찾아간다’는 식의 페이스북 메신저 협박을 받아 온 여중생은 결국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이버 폭력도 단기적으로는 우울, 불안, 대인 기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을 수 있다”며 “특히 청소년기에 겪은 상처는 성인이 될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