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22)씨는 최근 남자 친구와 크게 다퉜다. 남자 친구가 여성 전용 주차 구역을 보면서 “이제 여자는 사회적 약자가 전혀 아닌데 온갖 여성 우대 정책들이 존재한다”면서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다”고 말한 게 도화선이었다. A씨는 “여자들이 온갖 성범죄를 당하고, 애 낳으면 ‘독박 육아' 하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쏘아붙였고, 남자 친구는 “우리는 군대도 가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다 하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A씨는 “전에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남자 친구랑 이야기하다 보니 저절로 페미니스트처럼 되더라”고 말했다.
A씨 커플만 이런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청년들을 대상으로 남녀 간 성 평등에 대해 물었더니, 여성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남성은 오히려 남성이 불리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11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청년의 생애 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수년간 강남역 살인 사건, 온라인상 남녀 혐오 표현 등 청년층에서 심각한 남녀 갈등이 표출되자 성평등 인식과 원인에 대해 조사했다. 작년 10~11월 15세부터 39세 청년 1만101명을 설문했다.
연구 결과, 여성의 74.6%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은 18.6%만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남성의 51.7%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했고,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은 7.7%에 그쳤다. 특히 남녀 모두 20대 초반 연령대에서 자기들이 불평등하게 취급된다고 느끼는 비율이 높았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청년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동등하게 교육과 기대를 받고 자랐는데,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성 차별적 관행은 그대로 남아 있어 각자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은 남학생이 많이 한다는 데 남녀 모두 80%씩 동의했다. 집에서 딸이 집안일이나 제사·명절 음식 하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55%였지만, 남성은 29~35%에 그쳤다.
여성가족부는 “여성과 남성 모두 학교나 직장에서 성차별적 관행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각자에게 불리하다고 느낀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사회 곳곳 성차별적 관행들을 점차 바꿔 나가야 성별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