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25)이 중국 귀화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평창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4관왕에 오르며 대표팀 ‘에이스’ 역할을 했던 그가 국적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배경을 두고 여전히 말이 많다.

임효준은 중국에 귀화했지만 원칙적으로는 한국의 동의 없이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중국 대표로 나갈 수 없다. 사진은 그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1500m 우승 뒤 시상식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고운호 기자

임효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 국가대표로 나간 선수가 다른 국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이전 국적으로 나갔던 마지막 대회 이후 최소 3년이 지나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41조2항)을 적용받게 되면 2022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대회는 2019년 3월10일에 끝난 불가리아 세계선수권이다. 올림픽 헌장대로라면 2022년 3월11일부터 중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데, 베이징동계올림픽은 2022년 2월에 열린다. 다만, 한국과 중국 올림픽위원회, 국제빙상연맹(ISU)이 합의하고 IOC집행위원회가 정상을 참작해 승인할 경우 IOC 올림픽 헌장상 제한 기간(3년)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어 임효준의 베이징올림픽 출전이 완전히 가로막힌 것은 아니다. 임효준이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도 중국 귀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추행 범죄 낙인'에 훈련도 못해

임효준의 소속사는 지난 6일 “‘동성 후배 성희롱' 사건 이후 소속팀과 국가대표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 채 2년을 보냈다. 재판과 연맹의 징계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꿈을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며 “한창 선수 생활을 이어갈 시기에 운동할 수 없는 어려움과 아쉬움 때문에 중국 귀화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임효준은 2019년 6월 진천선수촌에서 실내 암벽 훈련을 하던 중 후배 선수의 바지를 벗긴 일로 그해 12월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작년 5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작년 11월 “당시 동료 선수들이 훈련 시작 전에 장난하는 분위기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볼 때 임효준의 행동이 추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임효준은 2심 무죄 판결로 형사 사건은 일단락됐다고 생각했지만,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빙상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임효준은 강제추행 사건으로 기소되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추행 범죄자로 보는 것에 대해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검찰이 또 상고를 하자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결은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작년 11월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국내 쇼트트랙 대회가 9개월 만에 열렸을 때 만난 빙상 선수들은 “코로나로 훈련장까지 폐쇄됐는데 스케이트를 못 타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성기 선수들에게 훈련을 못하는 것은 치명타다. 자신의 기량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크다. 임효준은 2019년 6월 이후 소속팀도 없이 훈련을 거의 못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운동할 곳이 없다는 현실은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던 그에게 큰 좌절감을 줬다.

◇징계 무효 소송서도 꼬인 스텝

임효준은 2019년 8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동료를 성희롱해 품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임효준은 2019년 11월 빙상연맹을 상대로 징계 무효 소송을 냈고, 법원은 한달 뒤 “1심 판결 때까지 징계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임효준은 작년 5월 형사 강제추행 사건 1심에서 벌금형을 받자 징계 무효 소송을 취하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징계 무효를 다투는 민사 소송을 계속 진행해도 이득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신 빨리 징계 기간을 채워 훈련도 하고 대회도 참가하자는 생각이었다. 2019년 8월부터 법원이 징계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그해 12월까지 4개월간 징계가 진행됐으니, 작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남은 8개월만 채우면 국내에서 뛸 수 있는 팀을 구해 훈련도 하고 대회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민사 재판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소송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줬다.

빙상연맹의 생각은 달랐다. 빙상연맹은 작년 7월 임효준의 징계 무효 소송 취하 사실을 알게 됐다. 법률 자문을 받은 빙상연맹은 임효준이 징계 무효 소송을 취하해도 ‘1심 판결 때까지 징계 효력을 정지한다’는 법원 결정을 취소하는 청구를 법원에 별도로 내지 않으면 ‘징계 정지’가 계속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빙상연맹은 작년 8월 임효준 측에게 법원에 “징계 정지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청구하든지, 아니면 징계 무효 소송을 다시 내서 법원 판단을 받아보자고 했다. 빙상연맹은 임효준이 자격정지 1년 중 4개월만 소화한 후 징계 효력이 정지된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임효준의 자격정지 기간이 아직 8개월 정도 남았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검찰의 대법원 상고로 강제추행 형사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징계 기간을 놓고도 빙상연맹과 해석이 다르자 임효준은 많은 압박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팀 선발전에 나가서 대표가 되더라도 자격정지 징계 효력이 다시 살아나 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훈련을 못해서 당장 운동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불확실성을 계속 안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임효준 측 관계자는 “형사 재판과 징계 문제 등 어느 것도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올림픽은 다가오고 운동을 못하자 힘들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