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8일 오후 1시 10분쯤 경북 경산에서 헤어진 여자친구가 사는 원룸 건물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집 현관문을 두드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학생 A(26)씨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이미 공동출입구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범행 7시간여 전인 오전 6시쯤에도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피해자의 집 현관 앞까지 찾아갔다. 피해자에게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A씨를 용서하지 않았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25)이 4일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대구지법은 “수사 과정에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점, 사진 등을 유포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했다”며 A씨에게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했다.

다른 사람의 거주지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가거나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로도 나가지 않는 경우 주거침입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주거침입은 집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범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강력 범죄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또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찾아오거나 전화, 메신저 등으로 연락해 협박하는 스토킹과 결합한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더욱 큰 공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강력 범죄로 이어지지 않고 미수에 그쳤거나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벌금형이나 집행 유예, 2년 이하 징역 등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는 경우가 다수다.

지난해 10월 오전 6시쯤 서울 도봉구에 있는 전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갔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자, 앞에서 기다리다가 흉기를 들고 무단으로 침입한 20대 남성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지난해 11월 전 여자친구의 집 화장실 창문틀을 뜯어내고 휴대전화를 집어넣어 내부를 들여다본 20대 남성 역시 벌금 1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25)에게 기존 살인 혐의 외에 절도와 주거침입 혐의를 추가 적용해 송치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만약 김태현이 피해자 집을 찾아갔던 날 모녀를 살해하지 않고 나왔다면 그 역시 벌금형에 그쳤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박상철 변호사는 “강력 범죄 가능성만으로 양형을 높일 수는 없다”며 “주거침입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거나 살인, 강간, 절도 등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되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 유예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2019년 5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원룸에 사는 20대 여성을 따라가 자택에 침입하려 한 조모(32)씨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2019년 5월 이른바 ‘신림동 원룸 강간 미수 사건'의 가해자 조모(32)씨도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작년 6월 대법원에서 주거침입죄만 인정돼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조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새벽에 귀가하는 한 여성을 뒤쫓다가 여성이 집으로 들어가자 현관문을 쳐서 문이 닫히는 것을 막으려 했다. 또 문이 닫힌 뒤에는 문 손잡이를 돌리고 비밀번호를 눌러보는 등 침입을 시도했다. 법원은 조씨의 강간 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주거침입 범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9월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거침입은 2015년 7721건, 2019년 1만2287건 발생했다. 5년 만에 59.1%가 증가한 것이다.

2015년~2019년 사이 발생 건수는 매년 평균 12.6%씩, 검거 건수는 13.4%씩 증가했다. 또 전국에서 하루 평균 26.2건의 주거침입성 범죄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