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엄지·검지를 모은 ‘집게손 모양’ 하나 때문에 기업과 국가기관이 곤혹을 치렀다. 이 손 모양은 무언가를 집거나 가리킬 때 쓰는 평범한 모습인데, 급진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선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의미로 마음대로 바꿔서 써왔다고 한다. 일반인 다수는 이런 맥락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루리웹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손 모양을 담은 기업과 경찰의 포스터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진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메갈리아’의‘집게손 모양’이 등장해 논란이 된 편의점 GS25의 이벤트 포스터(왼쪽). 서울경찰청의 도로교통법 개정 안내 포스터(오른쪽)에도 해당 손모양이 등장한다. /GS리테일·경찰청

첫 번째 대상은 지난 1일부터 캠핑 제품 관련 이벤트를 벌이며 해당 포스터에 ‘집게손 모양’을 차용한 편의점 GS25였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벤트 담당자가 급진 페미니스트라 ‘남성 혐오’ 이미지를 은밀하게 넣어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GS25 불매운동을 하자”는 주장으로 번졌다. 2일 오후엔 불똥이 국가기관인 경찰로 옮겨붙었다. 서울경찰청이 제작해 지난달 배포한 도로교통법 개정 안내 포스터에도 ‘집게손 모양’이 그려져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이번에도 “경찰이 남성 혐오 표현을 썼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GS25와 경찰청 모두 “아무런 의도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사과하는 뜻을 밝히고 포스터를 수정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측은 “포스터는 유료 사이트에서 ‘캠핑’으로 검색해서 나온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며 “불편을 겪으신 고객님들께 사과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해당 포스터는 아예 삭제했다. 경찰 역시 “손 모양은 카드 뉴스 페이지를 넘기는 부분을 강조하려 넣은 것이었다”면서도 “앞으로 양성평등위원회 등의 점검을 통해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외주 업체에서 생긴 문제인데 이걸 경찰에서 사과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며 “일단 문제가 된 포스터를 급히 수정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극단적 ‘젠더(gender·성) 갈등’에 기반한 비(非)정상적 문제 제기에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수사기관이 휘둘리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이런 식의 손 모양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주로 써오던 것이다. 이들은 검지와 엄지를 맞대는 ‘오케이 사인’에 약지를 접어 일베의 초성인 ‘ㅇ’과 ‘ㅂ’을 형상화한 손 모양을 자신들의 표지로 사용했다. 이들은 영화 포스터나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에 이 손 모양을 몰래 합성해놓고, 포털 사이트에 올려 널리 확산되는 걸 즐겨왔다. 방송사에서 실수로 이런 이미지를 방송에 사용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 제재를 받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고 방송 영상을 삭제한 사례도 많다. 일베와 메갈리아라는 극단적 온라인 구성원들의 ‘손 모양’ 표지에 기업과 공공 기관들이 놀아나는 셈이다.

피해자들은 “억울하지만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가 없다고 선을 긋거나, 반대로 관련자를 문책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대응해도 ‘편향’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유통 기업 관계자는 “일베·메갈리아 논란은 ‘피해 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며 “GS25 논란 이후 여러 회사가 홍보물에 문제 없는지 자체 검열에 들어갔다”고 했다.

극단주의자들은 논란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민감한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메갈리아나 일베의 손 모양에서는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어떠한 의미나 목적도 찾아볼 수 없다”며 “대중이 여기에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