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회과학대 3학년인 김모(23)씨는 최근 취업 전선에서 문과생들이 홀대받자 ‘경제학 복수전공’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지난달 경제학 복수전공 커트라인이 4.22점(4.3점 만점)까지 치솟은 것을 보고 복수전공의 꿈을 접었다. 2019년 군에 입대하기 전 평균 학점을 3.98까지 끌어올렸는데, 그 학점으론 커트라인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작년 1학기까지만 해도 서울대 경제학 복수전공 커트라인은 4.05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대학가에서 학점을 후하게 주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면서 1년 만에 커트라인이 만점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다. 김씨는 “복수전공 대신 경영 관련 학회에 가입하는 식으로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대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작년부터 비대면 화상 수업·시험이 일상화돼 공정한 평가가 어려워지자 대학들이 기존에 ‘상대평가’였던 과목을 대거 ‘절대평가’ 혹은 ‘완화된 상대평가’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만점에 육박하는 학점을 갖춘 소위 ‘코로나 학번(20학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전국 4년제 일반·교육대학 학생의 절반 이상(54.7%)이 A학점을 받았다. 원래는 세 명 중 한 명꼴(33.7%)이었다. 낙제점인 C학점 이하도 12.5%로 전년(28.3%)의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다.
이 때문에 고(高)학번들은 역차별을 호소하고 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기 학과 복수전공 기회에서 밀리고 있고, 장학금 대상에서도 ‘코로나 학번’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4학년인 김모(24)씨는 입학 이후 처음으로 작년 ‘전액 장학금’을 놓쳤다. 김씨는 “2017년에는 학점 4.18점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는데, 작년에는 4.2를 맞고도 수업료 20%만 면제됐다”며 “교양 수업 위주로 후한 학점을 받은 새내기들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군에 다녀오거나, 사정상 휴학을 했다 복학한 일부 고학번들은 ‘불공정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학점을 중요하게 보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치대 편입 준비생들도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 학번이 입시에 뛰어들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인 한양대 4학년 이모(24)씨는 “원래 내년에 시험을 보려 했는데, 코로나 후배들과 경쟁이 어려울 것 같아 올해 무조건 시험을 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고 했다.
코로나 속 ‘학점 인플레’로 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진 만큼, 취업 평가 때도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도 일부 전문대는 올 A+를 받아와 기업들이 서류 평가 과정에서 학교별 보정을 하고 있다”며 “학점에 대한 신뢰성, 변별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학점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무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점차 보완·강화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