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잘 지내요? 생일 축하해요!” 직장인 박모(여·28)씨는 올 초 자신의 생일에 이런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함께 10만원에 육박하는 명품 향수 선물을 받았다. 발신자를 본 박씨는 당황했다. 2년 전쯤 친구 소개로 딱 한 번 만났던 남자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도대체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고민하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 기능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결국 ‘거절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선물을 거절하는 상황이 참 민망했다”고 했다. 그는 이날 이후로 ‘생일 알림’ 기능을 껐다.

휴대폰 가입자들의 생일이 되면 개인들 핸드폰의 한 검색창에 생일을 알리는 광고 그래픽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네이버

온라인상에서 생일을 감추려는 이가 늘고 있다. 카카오톡, 네이버 등 스마트폰 앱으로 나도 모르게 생일이 알려지면서, 원치 않는 선물과 축하 메시지를 의무적으로 주고받는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다. 28일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 ‘카카오톡 생일’을 입력하자, ‘생일 비공개로 하는 법’ ‘알림 끄기’ 등이 연관 검색어로 줄줄이 나타났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도 이를 설명하는 콘텐츠가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21일 생일을 비공개로 전환했다는 직장인 조모(27)씨는 “예년보다 생일 연락이 10분의 1로 크게 줄었고, 내 생일을 기억하는 친한 이들에게만 연락이 왔다”며 “선물을 받으면 또 줘야 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 부담 역시 줄어서 좋다”고 했다.

이런 배경에는 IT(정보 기술) 기업들의 ‘생일 마케팅’이 깔려있다. 카카오톡, 네이버의 생일 알림 옆에는 나란히 ‘선물하기’ 버튼이 붙어있다. 자사의 쇼핑몰에서 커피, 케이크 쿠폰 등을 선물하도록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여기서 선물을 주고받을 때마다 IT 기업들은 수수료로 돈을 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운영하는 카카오커머스의 지난해 거래액은 약 4조원으로 추정된다. 작년 12월 기준 선물하기 월 이용자는 2173만명으로 전년보다 61% 늘었다.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일하는 임모씨는 “한 번은 생일 때 사업적으로 아는 분이 30만원짜리 고가의 한우를 선물해, 나도 부담을 느껴 곧바로 30만원짜리를 선물했다”며 “내 생일을 팔아서 불과 1분 만에 IT 기업이 매출 60만원을 올린 셈인데 생각할수록 황당하더라”고 했다.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생일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카카오톡, 네이버 앱을 설치하면 스마트폰 연락처와 생년월일·성별 등 ‘개인 정보’ 입력을 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집 약관 동의’를 받는다. 카카오톡은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외부 공개가 ‘기본 설정’으로 돼 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현모(29)씨는 “앱 가입할 때 약관을 꼼꼼하게 안 읽는 사람이 많지 않으냐”며 “선물도 결국 다 빚인 만큼 ‘안 주고 안 받기’가 속 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