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을 지구대에서 근무했는데, 소매치기 범죄는 한 건도 못 봤어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관의 말이다. 그는 “자택에 무단 침입해 물건을 훔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소매치기범을 잡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 했다”고 했다.

과거 우리 주변에서 흔했던 소매치기 범죄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소매치기 범죄 발생 건수는 2011년에는 2378건이었지만 2019년에는 535건으로 줄었다. 매일 6.5건 일어나던 범죄가 하루 1건 수준(1.46건)으로 줄어든 것이다.

CCTV 자료사진. /조선DB

이런 ‘소매치기 실종’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금 사용이 줄고, 소비 내역이 기록되고, 방범카메라가 늘면서 소매치기범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매치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줄었고 대신 붙잡힐 수 있는 리스크(위험성)는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이 늘면서 소매치기범이 ‘훔칠 돈’이 크게 줄었다. 최근엔 실물 신용카드가 아닌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한 결제까지 늘어나고 있다. 소매치기범 입장에서 눈독 들여야 할 현금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 지급 결제 동향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하루 평균 비대면 결제 규모는 약 849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9% 늘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올해 4월 기준 누적 가입자는 3600만명으로, 2017년에 3.8조원이었던 연간 거래액이 2020년에는 67조로 늘었다”고 했다. 유통 업계를 중심으로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한 이른바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는 곳도 늘고 있다.

소매치기범이 설령 신용카드를 훔쳤다고 해도, 훔친 카드를 쓰기도 어렵다. 모든 카드 거래 내역이 기록되는 ‘기록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매치기범이 훔친 신용카드를 결제하면 곧장 주인에게 알려진다”며 “도난·분실한 카드라도 사용 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에, 사실상 훔친 카드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매치기범을 감시하는 ‘눈'도 많아졌다. 거리 곳곳에는 방범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블랙박스가 눈을 번뜩이고 있다. 공공 기관이 설치해 운영하는 방범카메라는 지난해 133만6653대로 집계됐다. 10년 전보다 약 100만대가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만 해도 방범카메라를 통해 1만7079명의 범인이 붙잡혔다.

소매치기 범죄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지금의 10대에게 소매치기는 낯선 단어가 됐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김모(14)군은 “소매치기란 단어를 들어만 봤다”며 “웹툰이나 TV에서도 소매치기를 소재로 삼은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