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9시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주민 이모(71)씨가 도쿄올림픽 여자 55kg급 역도 경기 TV 중계를 보던 중 아파트 단지 전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전기 사용량이 급증해 아파트 용량의 한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에어컨 홀짝제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전자 제품 동시 사용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홀수 시간엔 홀수층만, 짝수 시간엔 짝수층만 에어컨을 쓰자는 ‘에어컨 홀짝제’에 따르면, 짝수층에 사는 이씨는 에어컨을 꺼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에어컨도, 올림픽 TV 중계도 끄지 못했다. 이씨는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는 건 공감하지만, 열대야도 심한 상황에서 에어컨을 끄라는 지침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별관 로비에 설치된 모니터에 전력수급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경 예비력은 11,470MW, 예비율은 12.9%을 기록하며 정상 수치를 나타냈다. /뉴시스

서울 한낮 기온이 연일 36도를 넘나드는 등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국의 아파트들이 ‘전력 과부하'를 막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폭염에다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로 인한 조기 귀가, 올림픽까지 ‘삼 박자’가 겹치면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해 특히 노후 아파트를 중심으로 단지 내 정전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25~26일 이틀에만 전국에서 45건의 아파트 정전이 발생해 1만9000여 가구가 피해를 봤다.

지난 25일 오후 10시 30분쯤 정전이 발생한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는 차단기와 전선 등이 불타 복구에만 15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파트 관계자는 “평소 400킬로와트(kW) 미만이었던 전력 부하가 사고 당시엔 600kW를 훌쩍 넘겼다”며 “7월 들어서부턴, 퇴근 시간인 오후 7시마다 전 가구의 80% 이상이 에어컨을 켜야만 나올 수 있는 전력 사용량이 매일 나온다”고 했다. 한국전력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 덮쳤던 2018년 대비 올여름 냉방 전력수요가 최대 13.6%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

정전이 발생한 아파트 주민들은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냉장고가 꺼져 음식이 상할 판” “에어컨이 꺼져 한밤중에 아이가 계속 운다” “키우던 반려 물고기가 죽었다” 등 다양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에어컨 사용 자제가 쉽지 않은 만큼, 전력 사용량이 큰 다른 전자기기 사용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아파트도 많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아파트는 퇴근 시간 이후인 오후 7시마다 ‘에어컨과 인덕션 사용을 줄여달라’는 방송을 한다. 아파트 중앙관제실 관계자는 “요리하면서 열내고, 그걸 또 에어컨으로 식히면 전력 사용이 엄청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비슷한 방송을 하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아파트 관계자도 “최근엔 스타일러(옷 관리기)나 에어프라이어를 쓰는 집이 많은데, 그 소비 전력이 상당해 동시에 쓰면 과부하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에어컨 홀짝제’ 시행 아파트에 사는 성모(71)씨는 “나 혼자면 에어컨 끄고 버티겠지만, 어린 손자가 있어 철저히 지키기가 어렵다”며 “대신 세탁기 사용을 멈추고 손빨래를 해서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