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둥이는 보기만 해도 짜증 나.” “검둥이 카메라 그만 비춰라 제발.”
지난달 30일 오후 1시, 도쿄올림픽 여자 육상 100m 경기가 온라인 중계되는 네이버 실시간 댓글 창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온라인 시청자들이 경기장의 흑인 여자 선수를 비하한 것이다. 카메라가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천)을 쓴 말레이시아 선수에게 돌아가자, 이번엔 “히잡 쓴 사람들 불쌍함” “히잡 토 나온다” 등 무슬림 문화를 모욕하는 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이날 오후 3시 여자 양궁 개인 8강. 이 경기 댓글창에서 안산(20) 선수의 상대인 인도 선수 별명은 ‘카레’가 됐다. “카레녀 한숨 쉬네” “카레는 김치하고 먹으면 맛있는데…” 등 경기가 끝날 때까지 ‘카레’ 표현은 끊임없이 등장했다. 일부 네티즌이 “인종차별적 표현을 쓰지 말자”고 했지만, 새로운 글에 밀려 금세 사라졌다. 종목 불문하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일본 선수들은 ‘쪽바리’, 중국 선수는 ‘짱깨’라는 멸칭으로 계속 불렸다.
네이버 등 포털을 통해 제공되는 올림픽 온라인 중계 댓글창이 ‘인종차별’ ‘특정 국가 비하’ ‘종교 모독’ 등 낯 뜨거운 글들로 오염되고 있다. 온라인 기사에 달리는 댓글과 달리, 중계 댓글 창의 글들은 올라왔다가 새 댓글에 밀려 화면에서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비슷한 댓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네이버는 ‘욕설, 모욕적 표현의 댓글을 AI(인공지능) 기술로 감지해 숨긴다’고 홍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중계창에는 초·중학생 등 미성년자들도 로그인 없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직장인 김우준(25)씨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수준의 얘기를 온라인이라고 아무렇게나 내뱉는 모습을 보니 참 부끄럽다”고 했다.
과거 한·일전 정도에서 나타났던 ‘과도한 민족주의’와 ‘자국 중심주의’가 온라인 중계 댓글 창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서울에 사는 대학생 김군찬(24)씨는 “우리 모두가 차별과 혐오에 무감각한 게 아닌가 싶다”며 “겉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얘기하던 사람들도 익명으로는 인종차별적 댓글을 다는 건 아닌지 우리의 이중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40대의 한 직장인은 “최근 MBC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일부 국가 소개 그래픽에 모욕적인 사진·설명을 사용해 국제 망신을 샀는데, 그와 똑같은 일이 포털사이트 온라인 중계 댓글 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은 과거부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강했는데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모습”이라며 “우리가 개발도상국일 때는 이런 모습이 큰 관심을 받지 않았지만, 세계적 위상이 달라진 지금은 국제 표준과 충돌할 수 있는 만큼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적 처벌이 최선은 아니지만, 혐오 발언에 대해서 우리가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선을 넘었을 때는 사회적 징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