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인이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시설 관리자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2019년 6월 당시 7살이었던 A양은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 7층의 초인종을 눌렀다. 위층에 거주하는 친구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였다. A양이 문을 두드린 곳은 지적장애인이 최대 4명까지 같이 살면서 자립과 사회적응을 익히기 위한 장애인 그룹홈이었다. 이곳에 살던 지적장애 2급의 B(54)씨는 A양을 발견하자 갑자기 아이의 바지에 손을 넣는 등 강제 추행했다.
B씨는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B씨가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점이 받아들여졌다.
A양의 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B씨와 장애인 그룹홈 시설장인 C씨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A양 어머니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을 상대로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자신이 지적장애 2급으로, 법률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책임무능력자’라고 주장했다. C씨는 “비록 소장이라고는 하나 본인 역시 뇌경색장애인으로 온전한 신체활동 능력이 부족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B씨가 저지른 충동범죄는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며 보호자로서 모든 주의의무를 다했으므로 책임을 면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창원지법 예지희 판사는 “B씨의 범행 때문에 A양과 어머니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명백하다”며 “두 사람이 공동으로 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B씨와 C씨는 공동로 A양에게는 1000만원을, 어머니에게는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예 판사는 “B씨의 지적 수준이 현저히 낮고, 전과 없이 지내온 사람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C씨 역시 같은 장애인으로서 장애수당에 의존하면서 간헐적인 수공작업 등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등 경제적 능력이 미약한 것을 종합했다”고 설명했다.
소송을 진행한 법률구조공단의 신지식 변호사는 “장애인 복지시설 관리자의 보호·관리감독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장애인 그룹홈은 지역 사회 내에 있기 때문에 관리자가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