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씨의 빈소. 이 씨의 5살 난 막내 아들은 영정 사진 바탕의 구름을 보고 "아빠 천사됐어?"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최훈민 기자

“엄마, 아빠 사진이 왜 저기 걸려 있어?”

31일 아침 경기 김포의 한 장례식장에서, 전날 남편을 잃은 박모(40·여)씨에게 5살 난 막내 아들이 물었다. 박씨가 “아빠 이제 여기 없어. 못 볼 거야”라고 답하자 막내는 아빠의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아빠 천사 됐어?”라고 되물었다. 영정 사진 배경엔 파란 하늘과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박씨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대”라고 했다. 그러자 막내가 말했다. “아빠 죽었어? 한참 이따가 아빠 다시 곧 태어날 거야. 아빠가 태어나면 우리 다시 다섯 식구 될 테니까 엄마 조금만 기다려.”

박씨 남편 이모(40)씨는 30일 오전 11시35분쯤 경기 김포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했다. 이씨는 택배사인 CJ대한통운 대리점주였고, 세 아이의 아빠였다. 이씨가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아파트는 그와 가족이 전에 살던 집이었다. 이씨 동생은 “그 아파트 살 때가 행복하고 좋았다는 말을 형이 자주 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이씨가 며칠 전까지 일했던 그의 대리점은 조화(弔花) 280여 개로 둘러쌓여 있었다. 전국 택배 대리점주들이 각자 보낸 조화였다. 거기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상이 X같네’ ‘너희들이 바라던 게 이거냐’ 등이라 적혀 있었다.

◇남편 휴대폰에 ‘절세미녀’로 저장된 아내는, 울지 않았다

31일 이씨의 빈소에서 만난 박씨는 남편 이야기를 풀면서도 울지 않았다. 무덤덤했다. “아직 아무것도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처음에는 노조원들의 단체 메시지를 무시했다. 답변하면 집단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그들은 내 남편을 몹쓸 사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놨다”며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꼭 밝혀졌으면 한다. 거짓이 진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와 함께 함께 대리점을 운영해 온 아내 박씨는 이제 세 아이를 홀로 돌보게 됐다. 두 아이는 10살을 넘겼지만 막내는 아직 손이 많이 가는 5살이다. 박씨가 아침에 막내를 챙기느라 이씨는 아침 식사 대신 늘 혼자 우유에 생식을 타 먹고 나갔다. 이씨가 목숨을 끊은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씨는 남편에게 직접 생식을 타줬다고 한다. 그게 이씨의 마지막 식사였다.

이씨가 남기고 간 휴대전화엔 아내가 ‘절세미녀♡○○♡’로 저장돼 있었고 둘째는 ‘사랑하는아들○○’라고 저장돼 있었다.

1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대리점주 이모씨의 분향소에 영정이 놓여 있다. 이씨는 민노총 소속 택배기사들을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택배기사로 일하다 대리점 운영, 처음엔 좋았지만…

고등학교 때 채팅으로 연을 맺은 동갑내기 이씨와 박씨는 2006년 부부가 됐다. 부부는 충남 천안시에서 쌀 배달로 생계를 꾸리다 2007년 첫 아이를 가졌다. 아내 박씨는 첫 출산을 힘겨워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씨는 터전을 처가가 있는 경기도 김포시로 옮겼다.

낯선 김포와 고향 경기도 성남시를 오가며 물류일 등을 해온 이씨는 2008년 택배 기사가 됐다. 그리고 3년간 일하다가 CJ택배 대리점을 직접 운영할 기회를 잡았다. 대리점은 개인사업자인 택배 기사들과 계약을 맺고 팀을 구성, 본사에서 보내주는 택배를 집집마다 배송한 뒤 이익을 나눈다.

이씨 가족과 소속 택배 기사 등에 따르면, 대리점주가 된 이씨는 10년 간 무난하게 대리점을 꾸려왔다. 때마침 이씨가 담당한 구역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처리할 물량이 늘었고, 수입도 늘었다. 관할 구역 인구 증가로 택배 기사를 추가 채용할 때면 같이 일하는 택배 기사들이 추천하는 사람과 최우선으로 계약했다. 10명 안팎이던 기사는 그렇게 18명으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노총 택배노조가 특수고용직 노조로는 처음으로 ‘노조설립 필증’을 얻으며 단체 행동 권리를 얻었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은 문 대통령 공약이었다. 강력한 힘을 얻은 택배노조에, 자신과 계약 관계인 택배기사 일부가 가입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씨는 ‘그러려니’했다고 한다.

◇노조원들, 무거운 택배를 ‘똥짐’이라 부르며 방치

먹구름이 닥친 건 올해 5월이었다. 이씨 대리점에서 택배를 받아가던 기사 18명 가운데 민노총 소속 12명이 이른바 ‘던지기’를 시작한 것이다.

파업의 표면적 요구 사항은 ‘택배 1건당 800원씩 본사로부터 받는 배송비 중 대리점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기존 10%에서 5%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택배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리점이 가져가는 수수료율은 10~12% 정도로, 웬만한 대리점은 5%만 받아서는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던지기란 택배 기사가 페트병 음료수 묶음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택배를 택배분류장(터미널)에 그냥 내버려두는 행위를 가리킨다. 택배가 터미널에 쌓이면 고객의 불만은 대리점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날라야할 택배였지만, 민노총 택배기사들은 이를 ‘똥짐’이라 불렀다.

이씨는 노조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씨는 하는 수 없이 노조원들이 버려둔 ‘저단가 고중량’ 택배를 직접 배달하기 시작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기사들이 도와줬지만, 무겁고 큰 택배만 몰리는 이 상황은 쉽지 않았다.

◇단톡방에 쏟아진 폭언들 “욕 처드셔서 좋겠습니다”

이씨의 어깨를 무겁게 한 건 비단 무거운 택배만이 아니었다. 개미지옥처럼 쏟아지는 택배 기사와의 단체 채팅방 대화는 그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왔다. 민노총 기사들은 이씨와 비노조원을 향해 “똥짐, 저단가 잘 찾아서 배송 부탁 드립니다” “나이 처 드셔 가지고 줏대 없이 욕 처 드셔 좋겠습니다” “자식한테 부끄럽게 살지 맙시다”는 식의 조롱을 카카오톡에 쏟아냈다.

이씨만 욕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게 이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고 한다. 이씨와 한 편에 선 비노조원 택배기사들도 비난·조롱·협박의 대상이 됐다. “넌 형 대우 받기는 아닌 거 같아” “비리 소장보다 더 X같은 XX” 등의 글이 올랐다. 아내 박씨는 “남편이 휴대전화 화면을 볼 때마다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왔다.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에 혈관이 좁아졌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날마다 쌓이는 저단가 고중량 택배 탓에 목과 어깨에 무리가 오면서 이씨는 일주일 입원을 하기도 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이씨는 업무 걱정에 통원치료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이씨는 아내에게 말했다.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 아내 박씨가 무작정 이씨의 차에 올라타 짐도 나르고 동행하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그러던 지난달 30일, 오전 일찍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사무실에 나와 밀린 일을 하던 아내 박씨는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오전 11시쯤 배송을 나서는 남편과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답은 없었다. 박씨는 집으로 갔고 곧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 병원으로 간 그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마주하게 됐다.

30일 사망한 경기 김포시의 한 택배대리점 사장 이모씨 곁에 남아 있던 편지 2장 중 1장/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는 마지막까지 부족하다”

택배 대리점주들이 노조가 설립 이후 어려움을 겪게 된 건 이들의 특수한 고용관계 때문이다. 대리점주와 택배기사는 똑같은 개인사업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조설립 필증 발부로 단체행동권을 손에 넣은 택배노조의 횡포에 맞서, 대리점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일한만큼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이기에 본인이 돈을 덜 받는 대신 일을 덜 하겠다는 걸 징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들의 노조 설립을 허했다.

그는 유서에 “노조에 가입하면 소장을 무너뜨리고 대리점을 흡수해 파멸 시킬 수 있다는 뜬소문, 헛소문이 점점 (날) 압박해 왔다. 처음 경험해본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과 쟁의권도 없는 그들의 쟁의 활동보다 더한 업무방해, 파업이 종료되었어도 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통보에 비노조원들과 버티는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며 “지쳐가는 몸을 추스르며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좋은 날이 있겠지 버텨보려 했지만 그들의 집단 괴롭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태업에 우울증이 극에 달해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세 아이에게 “너희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 왔는데 아빠가 너무 힘들다. 아빠 없는 아이들, 그게 아빠의 마지막 발목까지 잡았지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며 “이기적인 결정 너무도 미안하다. 너희에게 항상 웃음만을 주려 살아온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구나. 너희 옆에서 함께 지켜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데 아빠는 마지막까지 부족하다”고 사과했다. 부인을 향해선 “내 삶의 시작이자 끝인 한 여자”라며 “못난 남편 만나 이해해주며 살아온 시간, 죽어서도 용서를 구할게. 미안하고 사랑해”라는 문장을 남겼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