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투표로 결국 해산됐다. 1987년 출범한 지 34년 만이다.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서 학생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데다, 학내 성평등 수준이 과거보다 나아져 여학생들만의 단체를 꾸려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해진 결과로 해석된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지난 23일부터 닷새간 여학생(8378명)들을 대상으로 해산 여부 투표를 진행한 결과, 27일 오후 6시 재적 인원의 과반(50.4%)이 참여해 투표가 성사됐다고 밝혔다. 당초 경희대는 사흘간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투표율이 낮아 이틀을 연장했다. 결과는 해산 찬성이 63%, 반대 37%였다.
투표를 진행한 경희대 총학생회는 해산 투표권을 여학생에게만 줘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8년 동국대·성균관대, 2019년 연세대 등 앞서 총여학생회를 해산한 대학들은 남녀 학생 모두에게 공히 투표권을 줬다. 총여학생회는 남녀 학생들이 모두 납부한 학생회비로 운영된다.
최근 젠더(gender·성)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뜻으로 해산된 것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송재형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총여학생회는 남학생 위주였던 총학생회 문화에서 여학생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1980년대 말 등장한 단체”라며 “2010년대 들어 학내 복지, 인권, 표현 등 학생들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같은 과 정고운 교수는 “여학생들의 자유로운 대학 진학과 취업 등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총여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저하에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2018년부터 4년간 회장단 입후보자가 없었다. 해산 결정과 관련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여성들 스스로 여성을 위한 조직이 수명을 다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수도권 소재 대학 가운데 총여학생회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감리교신학대·총신대·한국항공대·한신대·한양대 등 다섯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