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능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사는 직장인 김소진(여·31)씨 집 앞에는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있는 CCTV 한 대가 있다. 이용료가 월 1000원이다. 서울시가 9월 시작한 ‘도어 지킴이’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다. 서울 시내에 사는 성인 1인 임차가구라면 성별·나이와 무관하게 선착순으로 CCTV를 저렴하게 설치해준다. 월 1만8000원짜리 CCTV를 첫해는 월 1000원, 다음 2년은 월 99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3000명을 모집하는데 한 달 만에 500명이 몰렸다.
김소진씨는 “4년째 혼자 사는데, 올해 초 밤 11시쯤 누군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잠금 장치를 열려고 하다가 도망가는 일을 겪었다”며 “홀로 사는 게 무서울 때가 많았는데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했다.
전국의 세 집 중 한 집은 1인 가구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국 1인 가구는 약 664만 가구로 전체의 32%에 이른다. 홀로 사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자 3인 이상 가구를 일반적으로 보고 설계했던 각종 지자체 정책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 잇따라 1인 가구 정책 전담 공무원이 생기고 있다. CCTV 설치는 물론, 독거 노인을 위해 집 청소나 수리도 해주고 혼자 해 먹는 요리법을 알려주거나 반찬도 나눠 준다.
서울 관악구는 지난해 처음으로 1인 가구 비율이 50%를 돌파했다. 중구와 종로·광진·금천·동대문구도 1인 가구가 40%를 넘어섰다. 2015년만 해도 서울 자치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40%가 넘는 곳은 관악구 한 곳이었다. 하지만 5년 새 5곳이 더 늘었다. 사실상 ‘두 집 또는 세 집 중 하나는 1인 가구’인 상황이 닥친 셈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과거에는 3~4인 가구가 정책의 핵심이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홀로 살게 된 사람이 빠르게 늘어난 만큼 이들이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10월부터 시내에서 세 들어 사는 1인 가구에 전문 인력을 보내 가구주 소득에 따라 월 50만원 안에서 집을 고쳐주거나 청소해주는 ‘1인 가구 주택 관리 서비스’를 시작한다. 홀로 사는 어르신 중에는 집을 제대로 정리하고 지낼 여력이 없는 이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젊은 층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의도도 담겼다.
또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시내 자치구 15곳 주요 지역에는 ‘안심 마을 보안관’도 배치해 야간 귀갓길 등을 살펴주고, 11월부터는 홀로 사는 어르신 등 1인 가구가 병원에 갈 때 시간당 5000원에 동행해주는 서비스도 시작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1인 가구는 정보가 부족한 데다 뭘 하려고 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적어서 복지 차원에서 연령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돌봄이 필요하다”고 했다.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는다는 점을 감안해 식생활을 지원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 2일 서울 동작구는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훈제 오리 오색볶음밥’과 ‘오이 탕탕이’를 만들 수 있는 요리 세트를 나눠준 뒤 비대면 요리 수업을 진행했다. 용산구는 지난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인 가구에 떡갈비와 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고, 서대문구는 12월 4일을 ‘1인 가구 김장하는 날’로 정해 혼자서는 만들어 먹기 어려운 김장 김치를 함께 담그는 행사도 준비 중이다.
1인 가구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드는 지자체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취임 직후 1인 가구 특별 대책 추진단을 만들었다. 서초구는 지난 2019년부터 1인 가구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중구도 지난 9월 1인 가구 전담팀을 별도로 뒀다.
성동구는 지난 8월 1인 가구가 밀집한 용답동에서 30대 여성 3명을 통장(統長)으로 뽑기도 했다. 1인 가구를 아예 행정에 참여시켜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였다.
다만 1인 가구 지원이 선거를 염두에 둔 지자체장의 보여주기식 정책이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 교수는 “취업난과 결혼 기피,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종전의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세계적 현상”이라며 “연령별 1인 가구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해 정책이 중복되거나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장기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