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직장인 노모(28)씨는 이달 초 서울 관악구의 7평(23.1㎡)짜리 오피스텔로 ‘독립(獨立)’했다. 그의 직장은 강남구 역삼동. 용산 부모집에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는 은행 대출로 전세금 1억2000만원을 마련해 1인 가구가 됐다. 요리는 서툴지만 밀키트와 배달 서비스로 충분히 끼니를 해결한다. 그는 “취업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도, 마치 18세 때처럼 가족들이 시시콜콜 생활에 간섭하는 걸 보고 독립을 결심했다”며 “독립을 늘 꿈꿔왔지만 결혼 때까지 기다리기엔 당장 결혼 생각이 없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자녀의 주거 독립이 늦은 대표적 국가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대학·직장에 가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학은 물론 취업 이후에도 부모 집에 함께 살다 결혼할 때에야 비로소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를 뜻하는 ‘캥거루족(族)’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 한국 젊은이들의 독립 문화가 변하고 있다. 근거리에 부모가 살더라도 결혼 전에 굳이 집을 나와 홀로 ‘1인 가구’를 꾸리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20대 1인 가구는 126만6911명으로, 5년 전(2015년)에 비해 43% 급증했다. 같은 기간 1인 가구 수 증가(27%)보다 훨씬 가파르다. 지난해 전체 1인 가구 다섯 중 하나(19.1%)가 20대일 정도다.
돈보다 자기 시간을 중시하고, 만혼(晩婚) 트렌드 속에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의 성향이 비록 완전한 경제적 독립은 아니더라도 이 같은 ‘주거 독립’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젊은이들의 독립 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돈보다 자기 시간을 더 중시하는 Z세대의 특징을 꼽는다. 통근 시간이 길더라도 가능하면 부모와 함께 살며 생활비를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미덕이었다면, Z세대들은 “통근 1시간 하느니, 돈을 좀 쓰더라도 출퇴근 시간 줄이고 자유와 시간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월급 모아선 집 못 산다’는 불신(不信)이 큰 만큼, 개인 시간을 활용해 주식·부동산·코인 등 재테크로 자산을 불리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의 부모 집에서 독립한 직장인 박모(27)씨도 그런 경우다. 그의 직장은 서울 신용산으로 편도 1시간 30분 거리였는데, 작년 11월 마포구 공덕동에 2억1000만원짜리 오피스텔 전세를 구해 독립했다. 그는 “매일 대중교통을 세 번씩 갈아타면서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독립했는데, 지금은 출근이 20분으로 줄어 개인 시간도 크게 늘었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26)씨도 지난달 경기도 판교 회사 근처에 ‘1인 가구’를 꾸렸다. 그는 “어차피 부모님과 살아도 퇴근 후에 운동하고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딱히 돈을 잘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회사에서 1인 가구한테 매달 주는 지원금 30만원도 받으니 이득”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남녀 모두 늦은 결혼이 대세가 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 세대의 간섭을 피하려는 이들도 많다. 서울 강남구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이모(29)씨는 올 초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인근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부모 집에는 2~3주에 한 번씩 들른다. 그는 “작년에 코로나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 간섭하고 말다툼하는 일도 많았다”며 “처음엔 부모님 반대가 심했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서 사이가 개선되니 부모님도 좋아하시는 눈치”라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편의를 중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활이 돌아가길 원하는 세대”라며 “회사에서 회식을 싫어하듯, 가정에서 가족 일원으로서 의무를 지기보단 시간을 아껴 혼자 시간을 보내려는 심리가 있다”고 했다.
밀키트(손질된 식재료·양념이 포함된 음식 세트), 세탁 대행 스타트업 등 이제 ‘엄마의 도움’이 없어도 되는 각종 서비스의 등장 역시 독립의 문턱을 낮췄다. 지난 9월 부모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로 독립한 직장인 장모(28)씨는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것밖에 할 줄 몰라 독립이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요새는 밀키트나 음식 배달이 워낙 잘돼 있어서 끼니 걱정 없이 집을 나왔다”며 “빨래도 오피스텔에 있는 세탁방에서 해결할 수 있다 보니 세탁기도 안 사고 몸만 쏙 빠져나왔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부모 집에서 살다 성북구로 독립한 대학원생 정모(26)씨는 “중고 거래 앱으로 청소기 같은 물건을 쉽게 샀고, ‘샐러드 구독’을 신청해 독립해서도 매일 건강하게 아침을 챙겨 먹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이의 ‘조기(早期) 독립’은 주택 청약 등 실리적 이유도 있다. 1인 가구로 일찍 독립할수록 무주택 기간이 길어져 청약 가점(加點)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혼 1인 가구가 아파트 청약을 할 수 있는 제도도 최근 마련됐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부모 지원 없이 젊은 세대가 본인 능력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무주택 가점을 높여 ‘청약 로또’를 꿈꾸며 부모 집을 벗어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강하게 ‘1가구 1주택’ 정책을 펴면서 다주택 부모가 자식에게 주택을 증여해 가구를 분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