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인천에서 층간 소음 갈등으로 40대 남성이 아래층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이후 시민들의 경찰 불신(不信)이 점차 커지고 있다. 당시 경찰이 동석한 자리에서 피해자가 칼에 찔렸는데 경찰은 가해자 제압 대신 지원 요청을 하겠다며 현장을 이탈했고, 근처에 있던 경찰은 비명을 듣고도 출동을 머뭇거려 결국 피해자 남편이 칼에 베여가며 몸싸움을 벌여 가해자를 제압했다. 중상을 입은 피해자는 의식 불명 상태다. 피해자 가족이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경찰의 직무유기, 살인미수 방조를 고발한다”고 쓴 글은 이틀 만에 20만명가량의 동의를 얻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는 해당 경찰관들이 소속된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에선 스토킹에 시달려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까지 벌어지며 공분이 더욱 커졌다. 피해자는 경찰이 준 스마트워치로 긴급 호출을 두 차례나 했지만, 위치 오차로 경찰이 엉뚱한 곳으로 출동해 헤매는 사이 전 남자 친구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유족들은 “국가를 믿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오열했다. 그간 스마트워치의 성과를 홍보해 온 경찰은 뒤늦게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지국으로 피해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현 시스템상 최대 2km까지 위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오차 범위를 50m 이내까지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과 규모는 더 커졌는데, 정작 사건 현장에서의 대응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에선 “경찰을 어떻게 믿겠느냐” “대응이 미숙한 경찰관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 등 비판 글이 수백 건 쏟아지고 있다. 21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에서 “대통령은 김창룡 경찰청장을 경질하고 국민들께 사과하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도 “창피하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경정급 경찰관은 “어떤 경우에라도 경찰관이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 피해자를 두고 이탈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내부적으로도 잘못된 대응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불신 여론이 커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21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이라며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한 이번 인천 논현경찰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이어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대기 발령 중인 현장 출동 경찰관 2명에 대해서도 신속히 감찰 조사를 마무리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22일에는 김 청장 주재로 시·도 경찰청장과 경찰서장 전원이 참석하는 전국 지휘관 회의를 열어 현장 대응 강화와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경(女警)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인천 사건 당시 출동한 남성 경위, 여성 순경 등 2명의 경찰관이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사건의 핵심이지만, 지원 요청을 위해 현장을 이탈한 순경이 ‘여성’이란 점을 부각시켜 젠더(gender·성) 문제로 비화시킨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은 현장 경찰관이 성별과 상관없이 복무 규정에 맞춰 제대로 대응했는지를 따져야 할 문제”라며 “남경과 여경의 역할론을 따지며 젠더 갈등으로 빠지게 되면,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을 다루는 본질을 흐리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