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간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한 빌라에서 출동한 경찰 2명이 비밀번호를 몰라서 3층 현장 도착이 지연됐다고 주장한 공동현관문. /김자아 기자

13초.

층간소음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한 아랫층 일가족 전원에게 칼을 휘두른 ‘인천 흉기 난동 사건’ 현장 빌라의 공동 현관문이 열렸다가 완전히 닫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와 같았다.

지난 15일 오후 칼부림 당시 현장인 인천 남동구 서창동 소재 빌라에는 두 명의 경찰관이 와 있었다. 후임인 여경은 3층에 피해자 가족과 함께 있다가 범인이 흉기로 피해 여성의 목을 찌르자 피흘리는 여성과 그 딸을 범인과 함께 내버려둔채 ‘지원 요청’을 하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1층 공동 현관문 밖에는 선임인 남자 경찰관이 피해 여성의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집에서 들려온 비명소리를 들은 남편이 빌라 안으로 뛰어들면서 경찰에게 “빨리 오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흉기 난동은 계속됐다.

경찰관 해명은 “공동 현관문이 닫혀서 늦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2일 조선닷컴 확인 결과, 사건이 일어난 빌라 공동현관문이 열린 뒤부터 완전히 닫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3초였다. 5초에 걸쳐서 열리고, 3초간 멈춘 뒤, 다시 5초에 걸쳐 닫혔다. 통상 자동문은 손으로 붙잡는 등 완력을 가하면 다시 열리거나 닫힘이 지연된다.

더욱이 문은 피해자 남편이 비밀번호를 누르며 열렸고, 이후 여경이 이 문을 통과하면서 다시 열렸다. 13초보다 더 긴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인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한 빌라 공동현관문. 닫힌 상태에서 열리는 데 5초, 열린 상태로 대기 3초, 다시 닫히는 데까지 5초 각각 걸렸다. 열리기 시작한 뒤부터 완전히 닫히기까지는 13초 걸렸다. /김자아 기자

남경이 3층 현장에 도착한 것은, 먼저 찔린 아내에 이어 함께 있던 딸도 칼에 찔리고, 뒤늦게 뛰어들어간 남편이 부상을 입어가며 간신히 범인을 어느정도 제압한 뒤였다. 남경은 “지원을 요청하는 사이 현관문이 닫혔고, 비밀번호를 몰라서 늦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가해자는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17일 구속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내는 의식불명 상태다. 지난 19일 남편은 아내의 상태에 대해 “지금 뇌사나 마찬가지”라고 조선닷컴에 말했다.

이 사건은 남녀 경찰 모두 시민안전에 대한 책임이라는 경찰의 직무를 유기한데서 발생한 비극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천 경찰 관계자는 선임인 남경의 책임이 더 크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베테랑 경찰들도 어려운 현장인데 1년차 순경이라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라면서도 “1층에서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한 명이라도 같이 피해자 남편을 따라 올라갔어야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비난은 도망친 여경에게만 집중됐다. 온라인에선 여성혐오에 편승한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또 불거졌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반성 대신 여경 혐오에 편승한 목소리가 나왔다. 소속 직장 이메일 인증을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는 사이트 ‘블라인드’에는 “이럴 거면 (여경) 왜 뽑아” “차라리 경찰견을 데리고 다니지” 등의 댓글이 올랐다. 경찰관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기본 직무를 망각한 데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글은 찾기 어려웠다.

오윤성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전으로 지원요청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피해자를 먼저 대피시켰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건 명백한 잘못”이라며 “지원 요청을 받은 경찰관이 신속하게 현장으로 이동하지 않은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경찰관들의 미숙한 대처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자 가족이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경찰의 직무유기, 살인미수 방조를 고발한다”며 올린 글은 이날 기준 20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대기 발령 중인 현장 출동 경찰관 2명에 대해서도 신속히 감찰 조사를 마무리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