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임플란트 제조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에서 1880억원을 횡령한 재무 담당 팀장급 직원 이모(45)씨가 5일 밤 경찰에 체포했다.

지난 3일 국내 1위 임플란트 전문기업 오스템임플란트는 자금관리 직원인 이모씨가 회삿돈 1,88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횡령액은 이 회사의 자기자본 대비 91.8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상장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4일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에 적막이 흐르고 있다. 2022.01.04. /뉴시스

경찰은 그가 1kg짜리 금괴 수백억 원어치를 사들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해왔다. 이씨는 또 잠적하기 한 달 전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건물 3채를 아내와 여동생에게 각각 한 채, 처제 부부로 추정되는 2명에게 한 채씩 증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여동생 등과 일종의 ‘가족 회사’도 꾸리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이 회사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것도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가 여권을 사용해 해외로 출국하지 않은 것은 확인했지만, 그가 장기간 도피를 준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밀항 가능성 등도 염두에 두고 그를 추적해왔다.

이씨는 그러나 이날 오후 9시 10분쯤 경기 파주시에 있는 한 건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강서경찰서 수사팀은 이날 오후 8시쯤부터 이씨가 머물렀던 주거지 건물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중 다른 호실에 숨어있던 이씨를 발견했다고 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이씨가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횡령한 돈 중 일부로 680억원 상당의 금괴를 구입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횡령한 돈으로 작년 10월 코스닥 기업 주식을 1430억원어치 사들였다가 11~12월 6차례에 걸쳐 매각한 ‘파주 수퍼개미’로도 알려져 있다.

이씨는 또 잠적하기 전인 지난 12월 9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경기도 파주시의 4층짜리 상가 건물을 아내 박모(45)씨에게 증여했다. 이씨와 박씨는 이 건물 4층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이씨가 이 건물을 사들인 건 2016년 11월이었다. 직원 이씨는 또 이 건물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4층짜리 건물도 같은 날 여동생 이모(42)씨에게 증여했다. 경찰 관계자는 “증여받은 사람이 직원 이씨의 여동생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직원 이씨는 또 동생에게 증여한 건물에서 약 190m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4층짜리 건물을 지난 12월 21일 박모씨 부부에게 증여한 것도 확인됐다. 이 두 사람은 이씨의 처제 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증여한 건물 3채에는 총 10억여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는데 최근 모두 말소됐다. 파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이 일대 4층짜리 건물은 현재 15억~16억원 안팎에 거래된다”며 “근저당이 풀린 건 건물 살 때 빌린 돈을 갚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원 이씨가 잠적 전 신변을 정리한 정황은 또 있다. 그는 여동생, 그리고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과 일종의 ‘가족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2월 설립된 것으로 법인등기상 경영자문업·시스템 통합 사업 등을 하는 회사로 돼 있는 A사다. 이 회사 주소지는 직원 이씨가 원래 갖고 있다가 아내에게 증여한 건물이었다. 이 건물 △△호가 주소지라고 했지만 이날 본지 기자가 가보니 해당 건물에는 △△호가 아예 없었다. 그는 애초 이 회사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었으나 잠적 한 달 전 사내이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돼 있다. 현재 이 회사 대표이사는 여동생 이씨다. 직원 이씨의 부친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사내이사다.

경찰은 이씨가 잠적 전 3채를 잇따라 증여한 것에 대해 “자산 빼돌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씨가 증여한 주택에 대해 몰수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범죄행위로 취득한 재산만 몰수할 수 있는데, 이씨가 각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시점은 2015~2016년 전후라 횡령 시점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현직 판사는 “이씨가 횡령금으로 담보 대출을 갚았어도 ‘소유권 취득’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몰수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오스템임플란트 측에서 이씨 가족을 대상으로 ‘사해 행위 취소’ 청구를 할 수는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씨가 범행이 발각될 무렵 가족에게 명의를 이전한 행위를 채권자인 회사의 이익을 해치는 ‘사해 행위’라고 보고 법원에 취소를 청구하는 것이다. 이게 받아들여지면 부동산 명의가 이씨에게 다시 돌아와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일부라도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