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부가 도청 실무 부서 최소 4곳의 예산을 음식값 등 사적으로 유용(流用)한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경기도·성남시 공무원들이 조선닷컴에 입을 열었다. 경기도 일부 부서 예산 가운데 연 수억원 규모의 ‘사용자가 지정되지 않은 시책추진 업무비’가 사실상 도지사가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예산이란 폭로였다.
◇“국장·과장 등 사용자 안 적힌 업무비 예산 관리 허술 노렸다”
경기도 팀장급 공무원 B씨는 15일 조선닷컴에 “경기도 업무추진비는 보통 부서 내부에서 사용하는 ‘기관운영용(用)’과 사업 추진을 위한 외부인 간담회 등에 사용하는 ‘시책추진용’으로 구분된다”며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는 다시 국·실·과장용이나 담당관용 등 외에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뉘는데, 경기도에서는 이 ‘사용자 미지정 업무추진비’가 사실상 도지사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드러난 이 후보 자택 배달 음식 결제 5건은 모두 이러한 ‘사용자 미지정 시책추진 업무비’에서 빠져나갔다.
예컨대, 이번 의혹의 최초 폭로자인 도청 7급 공무원 출신 A씨는 지난해 4월13일 한우 안심 11만8000원어치를 개인 카드로 결제한 뒤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에게 배달했고, 이튿날 이를 취소한 뒤 배씨가 준 법인 카드로 재결제했다. 이 비용이 집행된 건 실제 기획담당관실로 배정됐던 사용자 미지정 시책추진 업무추진비였다. 장부상 용도(비목)는 ‘수도권광역행정협의대책’, 구체적 사용 목적은 ‘수도권 광역행정 협력강화를 위한 관계자 의견 수렴’이라 적혔다.
당시 기획담당관은 A씨의 폭로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한 바 있다. 그는 “다른 부서에서 그 부서 법인카드를 쓰고, 그 대금 영수증을 우리에게 가져와 우리 쪽 시책추진 업무추진비 예산에서 지급하겠다고 연락을 해오면, 그쪽 부서장 결재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세세히 따져 묻지 않고 승인해줬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A씨 개인 카드 결제 뒤 배씨의 법인 카드로 재결제된 실무 부서 사용자 미지정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는 지난해 확인된 것만 ▲4월14일 기획담당관실 수도권광역행정협의대책 한우안심 11만8000원, ▲5월7일 공정국 공정경제추진 초밥 10만5000원, ▲5월21일 노동정책과 노사협력 복 요리 12만원, ▲7월15일 기획담당관실 도정역점 중국음식 7만9000원, ▲10월 6일 총무과 지역상생협력 백숙 12만원 등이다.
이들 4곳 부서의 5개 사용자 미지정 시책추진 업무추진비 예산 가운데 이 후보 개인 비용 처리에 빠져나간 돈의 전체 규모는, A씨 폭로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유용에 연루된 4개 부서의 각 사용자 미지정 업무추진비 예산은, 지난해 기준 기획담당관실의 수도권광역행정협의대책 4000만원, 도정역점 3900만원, 노동정책과의 노사협력 1500만원, 총무과의 지역상생협력 6400만원, 공정국의 공정경제추진 2200만원 등 총 1억8000만원이었다.
◇“의전팀이 가짜로 적은 메모, 예산 금고 여는 만능열쇠였다”
김씨가 사용한 예산이 실무부서에서 손쉽게 집행된 데에는 ‘부전지(附箋紙)’의 힘이 컸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전지는 관청에서 타 부서에 서류나 문서 등을 넘기며 주요 사항을 정리해 놓는 메모를 뜻한다. 의전팀에서 이 후보 개인적 용도로 결제한 영수증에 적당한 명분을 붙여 실무부서로 내려보내면, 일사천리로 예산을 열어줬다는 증언이었다.
경기도 관계자 C씨는 “의전팀이 담당부서에 영수증만 주면, 담당부서에서 이 영수증을 어떤 업무추진비의 어떤 목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꾸며야 하는지 막막해 하기 때문에, 의전팀에서 아예 ‘가짜’로 부전지를 만들어줬다”며 “의전팀에서 카드 영수증과 함께 결제 일시, 장소, 목적 등을 간략하게 적은 부전지를 실무부서에 보내면, 그걸 받은 부서 회계 담당자들은 ‘지사님 뜻’으로 받아들여 자기 부서 예산에서 그냥 집행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의전팀 부전지는 도청 각 부서 금고를 여는 만능 열쇠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당시 비서실장 “업무비, 의전팀장이 관리”… 의전팀장 “수사·감사 진행중”
B씨에 따르면 비서실장과 의전팀이 각 부서에 배정된 사용자 미지정 시책추진 업무추진비를 관리하고 있다. B씨는 “각 부서에 사용자가 지정 안 된 시책추진 업무추진비의 잔액과 현황을 관리하는 건 비서실장과 의전팀장”이라며 “의전팀이 속한 총무과장이 이를 관리해야 하지만, 경기도는 의전팀장과 비서실장이 핫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총무과장의 묵인 아래 비서실장은 의전팀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각 과에 배정돼 있는 시책추진 업무추진비의 잔액과 집행 현황 등을 보고 받았다”고 했다. 실제 김씨를 위해 업무추진비를 집행한 경기도청의 한 부서장은 ‘어떻게 당신의 부서 예산이 김씨를 위해 사용됐나’란 질문에 “총무과에 물어 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를 위해 B씨의 개인 카드가 사용된 뒤 법인 카드로 재결제가 이뤄진 시점은 지난해 4월부터 10월이다. 김씨가 유용한 타 부서 예산을 의전팀과의 핫라인을 통해 관리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당시 비서실장(2019년 7월~2021년 12월)은 정순욱씨다. 2018년 이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된 직후 인수위원회에 합류해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인사운영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배씨를 채용한 사람으로, 올해 초 동두천시 부시장으로 영전해 자리를 옮겼다. 정 부시장은 16일 “타 부서 업무추진비든 뭐든 업무추진비는 다 의전팀장이 관리했다”며 “나는 업무추진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2020년 7월부터 현재까지 의전팀을 맡고 있는 조광근 팀장은 16일 “비서실장과 핫라인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그럼 의전팀이 속해있는 총무과장이 이 일의 책임자냐’고 묻자, 그는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2020년 인사과장을 맡다가 지난해 총무과장을 맡았던 의전팀 관리자 이의환 당시 총무과장은 의전팀이 김씨 요청에 따라 예산을 투입하는 걸 묵인해 줬다는 의혹에 빠져 있다. 정 부시장과 마찬가지로 올해 초 이천시 부시장으로 영전한 그는 여러 차례 연락과 방문에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