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안치 냉장시설이 갖춰진 영안실 모습. /부성냉동산업

지방의 A 장례식장은 최근 대형 고깃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정육용 냉장창고’를 빌렸다. 영안실 안치 시설이 꽉 차면서, 시신을 차에 싣고 가 임대한 냉장창고에 모신다. 이 지역 유일한 장례식장인 이곳은 영안실에 안치 시설 4칸을 갖췄지만, 이달 초부터는 한순간도 빈칸이 나지 않고 있다. 30년 전 장례식장을 개업한 뒤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유족은 정확한 상황을 모른다. 그저 ‘영안실이 꽉 차 외부에 시신을 모신다’는 정도로만 안다. 장례식장은 이런 유족들에게 그 장소가 ‘정육용 창고’란 사실까지는 차마 못 알린다. 장례식장 영안실에 있던 시신이 화장터로 나가 자리가 생기면, 비로소 창고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시신이 영안실로 옮겨진다. 그마저도 화장일이 하루 이틀 남은 시신만 영안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장례식장은 워낙 정체 현상이 심해 빈소도 화장일 바로 전날이나 당일만 차리고 있다.

다른 지역의 B장례식장은 빈소에 별도 선반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있다. 식장에 따르면, 장례를 문의하는 유족들에게 “이미 안치실이 꽉 찼다”고 안내했지만, 달리 시신을 보관할 방법이 없는 유족들은 “그래도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다. 식장 관계자는 “시신 안치용 냉장고 한 칸에 시신 2~3구를 겹쳐 안치하는 장례식장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유족에겐 비밀”이라고 했다.

일부 장례식장들은 시신을 상온에 보관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서는 한 장례식장이 시신 보관용 냉장고 6대가 꽉차자, 내부 온도가 10도를 넘는 장소에 시신 13구를 보관하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장사법상 장례식장이 시신을 4도가 넘는 공간에 보관하는 것은 불법이다.

장례업계 관계자는 “상온에서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라며 “이틀째부턴 시신 부패가 시작되고, 냉장고에서도 10일을 넘기면 부패가 시작된다”고 했다.

안치 시설 부족 사태의 근본 원인은 코로나 사망자의 급증이다. 31일 장례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간 주요 상조회사의 장례건수는 지난해 12월 대비 40%가량 증가했다. 장례협회 관계자는 “코로나 사망자가 하루 300명씩 쏟아지는 데다, 3~4월 환절기 사망자수도 늘어난 결과”라고 말했다.

장례건수 증가는 화장터와 장례식장 포화로 이어졌다. 시신 화장 대기가 길어지면서 보편적으로 치러오던 ‘3일장’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고,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이 때문에 장례식장에선 시신 보관용 안치실이 부족한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27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 주차장이 장례차량으로 가득 차 있다. /뉴스1

장례식장들은 고육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안치 시설과 비슷한 환경에 시신을 보관해두는 것이다. 장례식장들은 급한대로 신선식품 배송용 냉동탑차나 정육용 냉장창고 등을 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안치실 냉장고와 식품용 냉장고의 온도 환경이나 기능은 기본적으로 같다”며 “시신을 부패 상태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임시 안치실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두드러졌던 안치실 부족 현상은 최근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수도권 유족들이 지방에서 장례를 치르던 이른바 ‘원정 장례’도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하나하나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우선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 장례 지침에서 ‘화장 원칙’을 폐기, 매장도 가능하도록 바꿨다. 그러나 ‘코로나 사망자는 매장시 나일론 시신백에 수습’이란 규정을 남겨 그대로 뒀다. 이러면 시신이 땅 속에서 자연 분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 사망자에게 지급하는 장례 지원비 1인당 1000만원은 여전히 ‘화장 증빙’을 요구한다.

지난 27일엔 장례식장 등에 ‘냉장 안치공간 추가 확보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늦었다는 지적이다. 시신 안치 냉장고 제조업체 이종필 부성냉동산업 대표이사는 “보통 장례식장 개업 때, 혹은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때나 주문이 들어오는데, 요즘은 매일 1~2건씩 추가 주문이 들어와 생산 능력이 따라가질 못한다”고 했다.

결국은 화장로(爐) 가동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화장로(爐) 1기당 1일 가동 횟수를 늘리면 인센티브를 준다. 하지만 1일 7회를 초과한 추가 가동시에도 7회 인센티브와 동일하다. 이상재 대한장례인협회 회장은 “화장로를 24시간 가동할 인력 확보 비용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화장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장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황보 의원은 “화장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설치의 어려움이 있는 사설화장시설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다”며 사설 시설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