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이자 근로자 노동권을 보장하는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이 효력을 갖게 된 20일 장애인 단체와 노동계가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2조 개정! 결의대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500명이 모였다. 이들은 ‘ILO협약 반대하는 전경련 해체’ ‘비정규직 철폐’ 등 문구가 쓰인 손피켓을 들고 ‘국회는 노조법 2조 즉각 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노동 기본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ILO 핵심협약은 작년 2월 국회를 통과해 이날부터 발효됐다. ILO 핵심협약은 ILO가 채택한 190개 협약 중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에 관한 8개 협약이다. 우리나라에선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단결권에 관한 제98호’ ‘강제노동 금지(군 복무는 예외)에 관한 제29호’ 등 3개가 이날부터 발효됐다.
그러나 민노총은 국내 노조법이 ILO핵심협약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현행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리기사 등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는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의 교섭 거부가 계속되고 있고, 노동 조건과 직결된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는 파업을 불법으로 보는 등의 실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현행 노조법을 전면 개정하지 않고서는 ILO핵심협약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며 “노조법 2조를 개정해 노동법적 권리를 빼앗겨 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이 쟁취될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했다.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ILO핵심협약 비준과정에서 이를 반대해 무력화 시키려했다”며 전경련을 비판했다.
집회를 마친 민노총은 전경련까지 행진해 ‘비정규직’ ‘노조법 2조’ ‘특수고용’ 등 단어가 써 있는 대형 쇠사슬을 끊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후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행진한 뒤 오후 3시 30분쯤 해산했다.
오후 1시 50분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선 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가 같은 내용의 집회를 1000명(주최측 추산) 규모로 열었다. 이들은 ‘ILO협의 이행! 노동3권! 정치자유!’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당당한 노동자로!’ 등의 손피켓을 들었다. 현장에서 파도타기와 노래공연 등을 마친 이들은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 사무실 앞 고궁박물관까지 행진했다. 앞서 오전 10시엔 한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인수위 앞에서 민노총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장애인 단체도 크고작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10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는 인수위 사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지원대책에 대한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답변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가자 30여명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단식농성 선포 결의대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앞서 전날인 19일 이 단체는 555명의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어제 인수위에서 장애인 단체들과 간담회 하면서 낮 시간 주간활동 서비스를 확대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했다”며 “더 이상 장애인 가족들에게 피멍 들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죽고 25만이 없어져야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오후 1시쯤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인근에선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가 열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한국피플퍼스트, 부모연대 등 장애인 단체와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장애인 등 주최측 추산 130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발달장애 국가 책임제 실현하라’ ‘장애인 생애주기별 교육권 보장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전장연은 논란이 됐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하고, 장애인을 혐오세력으로 몰아가는 세력이 대한민국에 집권한다고 한다”며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내일인 21일 오전 7시부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2호선 시청역·5호선 광화문역 세 군데에서 동시에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르는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교통장애인협회 등 일부 장애인 단체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반대한다”며 맞불 집회를 예고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전장연의 집회용 가건물이 설치된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인근에 기습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국민의 출퇴근을 볼모로 장애인들의 진정한 요구를 왜곡하는 계획된 정치행위를 즉각 그만 두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은 오는 21일 전장연 집회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