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구로구의 한 동네 빵집. 사장 김모(59)씨가 빵을 만드는 데 쓰이는 각종 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로부터 온 거래 명세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밀가루, 마가린, 설탕, 버터, 계란 등 주요 빵 재료 11가지 중 10가지가 작년 12월과 비교해 하나도 빠짐없이 올라서다. 가장 많이 쓰이는 필수 재료 중 하나인 밀가루는 20kg짜리가 4개월 새 21% 올랐다. 계란 한 판(30개)도 3800원에서 5600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빵값은 그만큼 올리지도 못했다. 김씨 가게의 카스텔라 가격은 현재 1개당 2000원으로 작년 말과 똑같다. 하지만 밀가루, 설탕, 버터, 계란 등 카스텔라 재료값은 줄줄이 치솟은 상황이다. 김씨는 “12월과 비교하면 주재료 11가지만 따져도 한 달에 54만원을 더 쓰게 됐다”며 “밀가루는 다른 재료와 달리 굳어버리기 때문에 창고에 비축해둘 수도 없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포함한 각종 재료값이 치솟으면서 전통시장이나 동네 곳곳에 자리 잡은 소규모 빵집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은 최소 3~6개월은 재고를 확보해두는 데다 수입처도 다양하지만 작은 빵집들은 소수의 공급 업체와 거래하며 그때그때 재료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요즘처럼 단기간 물가가 치솟을 때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30년 넘게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61)씨는 현재 500원에 판매하고 있는 크림빵, 곰보빵, 단팥빵의 가격을 인상할까 고민 중이다. 품질 좋은 빵을 1개당 500원에 판다는 점이 김씨가 앞세웠던 가게의 경쟁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는 빵값을 올리지 않으면 팔수록 손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라 어디 가서 빵값이 500원이라고 말도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세종시의 한 전통시장 인근 빵집 사장 오모(47)씨도 작년 가게에서 꽈배기를 3개에 1000원에 팔았는데, 작년 말 1개에 500원으로 바꿔버렸다. 제품 가격을 올리고 한 달간은 장사가 잘 안돼 힘들었지만 밀가루, 식용유 등 주요 재료값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빵집도 작년까지 3개에 1000원 하던 빵을 요즘은 2개에 1000원을 받는다.
식용유 값 인상도 빵집 사장들에겐 큰 부담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문모(57)씨는 식용유 값이 오르기 시작한 작년부터 식자재 마트 전단을 모으고 있다. 가격을 비교해보고 제일 저렴한 식용유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문씨가 계산대 옆에 둔 식자재 마트 전단을 보니, 식용유 18L 가격이 2주 만에 4만9800원에서 5만2800원으로 올라 있었다. 문씨는 “2월 한 납품 업체에서 주문한 재료비만 149만2000원인데 3월에는 234만원으로 올랐다”며 “매출은 제자리걸음이고 월세 등 고정 지출도 그대로라 재료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프랜차이즈보다 더 저렴하다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던 동네 빵집 사장들은 고민에 빠졌다. 물가를 감안하면 빵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러면 손님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것이다. 경기 시흥시에서 3년째 약 16㎡(5평)짜리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오모(60)씨는 올해 1월에 팥빵 가격을 100원 올렸는데 요즘은 “그때 더 많이 올릴걸” 하고 후회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최근 특히 밀가루값이 가파르게 올랐는데, 또 빵값을 올리자니 손님들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저렴한 빵값을 보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