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육군 중위로 전역한 20대 여성 김모(26)씨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면 범죄의 타깃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니 주변의 시선도 달라졌다.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사람을 2등 시민 취급하는 시선이 사라졌다”고도 했다. 3년 차 직장인 이모(26)씨는 “남자들이 하도 군대 타령을 해서 ‘까짓것 여자도 가지 뭐’ 하는 입장이었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여자들도 사격, 방독면 착용법 등 기초적인 군사 훈련은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선일보·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서 전 세대 여성 중 20대 여성이 ‘여성 징병제’에 가장 많이 찬성(42%)했다.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전시 상황에서 여성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42.2%)을 꼽았고, ‘여성도 남성과 같이 병역 의무를 져야 하므로’(25.2%), ‘여성도 병역 수행 능력이 충분하므로(14.9%)’, ‘군 복무 경험은 여성에게도 좋은 경력이 되기 때문’(12.3%)이 그 뒤를 이었다.
젊은 여성들은 취업 전선에서 군복무 경험이 일종의 ‘스펙’으로 작용하는 것에도 주목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26)씨는 “나는 석사 학위도 있는데, 이제 막 졸업한 남자들이 군복무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아서 월급을 더 받더라”면서 “남자 상사들이 군대 다녀온 남자 후배들과 공감대 형성을 더 잘하는 걸 볼 때도 군복무가 손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취업 준비생 정모(25)씨도 “지난 하반기 에너지 기업에 지원하려고 원서를 쓰다 보니 ‘군복무란’에 ‘군필·미필·면제’가 적혀 있어 기업이 남자를 선호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남성만 사병으로 복무하게 한 현 징병 제도가 여성에게 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남성만 병역 의무를 지게 한 병역법 3조1항에 대해 지금까지 헌법 소원이 13차례 제기됐는데, 이 중엔 여고생이 낸 경우(2005년·각하)도 있었다. 당시 18세였던 여고생은 청구서에서 “여성도 병역 의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체 현역 군인 약 55만5000명 중 여군은 약 2.4%(1만3449명·2020년 기준)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저자인 김엘리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우리도 남자 못지않게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세대”라면서 “군대 가겠다는 것도 안보를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징병제’가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남녀가 함께 훈련받을 수 있게 시설과 시스템을 바꾸는 데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남성 징병제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남녀 공동 군복무를 위한 시설과 관리 체제를 갖추는 데 추산하기 어려운 경제적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한 이유로 들었다.
남성 위주의 폐쇄적 군대 문화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우려도 많다. 본지 조사에서 20대 여성들은 여성 징병제 반대 이유로 ‘여성은 출산·육아로 국가에 기여하므로’(24.6%)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군대 내에서 여성들이 성차별·성폭력을 경험할 위험이 크기 때문’(20.3%)이라는 대답도 높게 나왔다.
지난해 4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도 징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글이 올라와 29만명이 동의했는데, 당시 청와대도 “여성징병제는 다양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어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 등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군 복무 환경, 남성 중심의 군 문화 등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