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역에서 군인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강원도 고성 육군 22사단에서 복무한 대학생 이지훈(24)씨에게 군대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대대 상황실에서 4조 3교대로 근무했다는 이씨는 “3일에 하루꼴로 밤을 새우면서 일하다 보니 복무 기간 내내 숙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대학 여자 동기들이 해외로 어학연수 갈 때, 휴가 하루 따겠다고 ‘생쇼’ 하는 자신을 보면 자괴감까지 들었다. 복학 후 전공 수업에선 간단한 코딩 함수도 기억하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이씨는 “남들은 ‘요즘 군대 편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청춘의 일부를 희생한 것”이라고 했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이 중 89.4%는 비(非)복무자에게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16~21일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통해 육해공군 및 해병대 현역 장병과 전역자, 장병 가족 등 2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다. 조사 응답자 중 73.8%(1642명)는 현역 장병, 전역자는 23.6%였다.

의무 복무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은 매우 컸다. 응답자 10명 중 7명(72.8%)은 ‘징병제는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답했다. 육군 일병 박모(22)씨는 “가정과 학교에서 남녀가 차별 없이 자라왔는데, 유독 군대만 아무 보상도 없이 ‘남자니까 다녀오라’고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진명여고 위문편지에서처럼 군인을 ‘군캉스’ ‘군바리’라고 조롱하는 여성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병사 월급이 기존보다 210%가량 올랐고, 휴대전화 사용도 가능해져 기성세대들은 “요즘 군대는 캠프 수준 아니냐”고 하지만 20대 남성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지난해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이모(23)씨는 “군대가 예전보다 좋아진 건 맞지만, 기성세대들은 그 보상으로 군 가산점 같은 사회적 혜택을 누렸다”면서 “1980년대 중반엔 현역 판정률이 60%가 안됐지만 우리 세대는 공익까지 포함해 90%대의 현역 판정을 받고 복무한다”고 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역 후 각자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젊은 세대는 취업과 내 집 마련 모두 막막한 상황에서 입대하는 것”이라면서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사는 이들에게 징병제는 일방적 희생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전역 후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도 문제다. 설문 결과 장병 87.9%가 ‘군 복무가 취업이나 학업 등 사회 복귀에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A(24)씨는 2차 시험 낙방 후 지난해 현역으로 입대했다. A씨는 “군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 시간 확보가 어렵다. 내겐 입대가 경력 단절인 셈”이라고 했다. 숭실대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김강수(24)씨는 “복학한 학기에 조별 과제 조장을 맡았는데 줌(Zoom)으로 화상회의를 여는 법도 몰랐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기업 채용마저 급감했는데, 학점 인플레를 누린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서강대 재학생 B(24)씨는 “졸업한 여자 동기들은 벌써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데, 나는 대학 수업도 따라가지 못해 답답했다”고 했다.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0대에 1년 6개월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커리어를 흔들 정도로 큰 문제”라면서 “인구 감소로 현역 판정률이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군 복무로 인한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엄효식 예비역 대령(전 합참 공보실장)은 “군이 선제적으로 병사들에게 보상 체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추가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