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한국 남자랑 결혼하면 여자 인생 망하지. 최악의 종자라고 생각함.’

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결혼 꺼리는 이대녀 “맞벌이해도 독박육아… 여자만 손해”’(본지 13일 자 A4면)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기사와 댓글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자, ‘저기 몰려와서 댓글 쓰는 애들 죄다 쿵쾅이X들임. 애초에 결혼 못하는 애들ㅋ’이란 댓글이 달렸다. 여초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에게 첫 번째 댓글을 보여주자 “표현이 조금 과격할 뿐 틀린 말은 아니다”고 했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는 두 번째 댓글에 공감한다며 “우리는 모두가 동의하는 얘기를 온라인에서 속 시원하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남녀 혐오를 부추기는 젠더 최전선으로 부상했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16세 이상 남녀 1786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57.1%가 ‘현실사회에서의 젠더 갈등에 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젠더 갈등이 과장되어 나타난다’고 응답했다. 특히 이곳에서 나오는 혐오 발언은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10~20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2019년 여초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활동한 한 여대생이 외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부적응 장애가 있던 아이가 워마드에 깊이 빠지면서 ‘한국에선 여성으로 태어난 게 죄’라는 커뮤니티의 담론을 믿게 됐다”며 “외할머니가 낳은 어머니가 자신을 여자로 낳아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망상에 빠져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본지가 만난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우리 커뮤니티에는 가짜 뉴스가 없으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했다. 2018년부터 에프엠코리아(이하 펨코)를 매일 한 시간씩 이용하는 현모(24)씨는 “우리 커뮤니티는 개방형이고 동시 접속자가 10만명이 넘으며 뉴스에도 자주 보도된다”고 했다. 7년째 여초 커뮤니티 여성시대(이하 여시)를 이용하는 유모(28)씨는 “온라인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공격받는 경우가 많아 커뮤니티 안에서라도 안전하게 활동하고 싶었다”며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펨코나 여시) 이용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으며 커뮤니티에서 하는 주장을 오프라인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방구석 민심’이나 ‘키보드 워리어’ 취급받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최근 정치나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 주장이 현실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37.2%)가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19.8%)의 두배 가까이 됐다.

남혐 논란 불지핀 ‘집게 손가락’ 지난해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 혐오’ 의혹을 제기한 편의점 GS25의 포스터. /GS25

실제로 지난해 5월 편의점 GS25 행사 포스터에 남혐 커뮤니티의 상징인 손가락 집게 모양이 올라왔다가 거센 불매운동에 직면했다. 포스터가 공개된 지 10분 만에 “남혐이 의심스럽다”는 글이 올라왔고, 불매 운동이 번질 조짐이 보이자 GS리테일은 공식 사과한 뒤 관계자들을 인사 조치했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GS25 불매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맥도날드, 무신사, 카카오뱅크, 세븐 일레븐 등 지난 한 해에만 수십 군데 기업과 관공서가 남초·여초 커뮤니티의 공격으로 사과문을 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결집력을 기업들도 이제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파워는 지난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초 커뮤니티 펨코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고 윤석열 후보로 결집하자, 이재명 후보는 지난 3월 여성 관련 선거 공약을 발표하면서 펨코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여시에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이 낙선한 뒤 여시는 그를 지지하며 ‘개딸’(개혁의 딸)을 자처하고 나섰고, 펨코에서도 20대 남성을 대변한다는 이준석을 지지하며 ‘개준스기(이준석 애칭)를 지키자’고 나섰다. 디시인사이드를 15년째 이용하는 방모(31)씨는 “20~30대 남성들 목소리를 정치권에서도 이제야 신경 쓰기 시작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가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유재인·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