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2001년 출범 이래 여러 차례 존폐 논란이 있었지만 ‘여가부 폐지’가 대선 공약이 될 만큼 젠더 이슈로 부상한 건 처음이다. 호주제 폐지, 성폭력·성매매 방지법 제정, 경력 단절 여성 지원 등 여가부 업적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20대 남성 10명 중 6명(63.8%)이 폐지에 찬성할 만큼 이들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정권의 비위에 침묵하며 남녀 갈등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탓으로 분석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여가부가 보인 정치적 태도에 대해서는 여가부 관료들 사이에서조차 “부끄럽다”는 소리가 나왔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사건에 대해 당시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라고 했다. 남인순 등 민주당 의원들이 박원순 사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불렀을 때도 여가부는 침묵했고,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불렀다.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횡령 사건이 터졌을 땐 국회에 자료 제출을 미루기도 했다.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은 “여가부가 할 일은 여성·소수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지나치게 정권 눈치만 봤다. 폐지 소리를 들을 만하다”고 했다.
여가부 장관 자리가 여성 단체장과 정치인들의 ‘출세 도구’로 전락한 것도 입지를 좁혔다. 역대 장관 13명 중 초대 한명숙 장관을 포함해 지은희·변도윤·김금래 등 4명은 여성 단체 출신, 조윤선·김희정·강은희·진선미 등 4명은 정치인 출신이다. 한 여성계 인사는 “여가부 장관 인선이 능력보다 보은(報恩) 인사처럼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면서 “최근 여성 정치인들은 장관 타이틀을 얻은 뒤 공천받아 선거에 나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들이 여가부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고 말했다.
‘정책 체감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 초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여가부 주요 사업을 아는지 물었더니, ‘안다’는 응답이 사업별 평균 54%에 불과했다. 정책 체감도가 낮은 것은 전체 정부 예산의 0.24%(1조4650억원)밖에 안 되는 초미니 부처인 탓도 있지만, 여가부가 성평등 정책 외에 보육(2008년 복지부로 이관)·가족·청소년 업무까지 맡으면서 본류를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차인순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여가부가 성차별 문제 해결에만 20년간 집중해 왔다면 그 존재 이유를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밀어붙이기식 정책도 역효과를 냈다. 경제·사회 환경이 급변해 여성들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커지는 상황에서 남성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여가부 장관은 “언어를 순화하고,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요청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도 “여가부가 가정·성폭력 피해자, 학교 밖 청소년 등 다른 부처가 신경 쓰지 않는 소외 계층을 위해 20년간 노력해 온 것은 알아주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지자체 여성 기관들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이 조사한 ‘광역 자치단체 여성 관련 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산하에 여성 정책을 연구하는 별도 기관은 총 14곳이다. 이들이 한 해 쓰는 예산은 827억원. 지난해 연구 과제를 50개 이상 한 곳도 있지만, 10개가 안 되는 곳도 있다. 이 밖에도 지자체에는 여성복지관, 여성의광장, 여성회관, 여성인력개발원, 여성플라자 등 다양한 기관이 있는데, 일부 기관은 교육·취미 프로그램 등이 중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시에선 여성복지관, 여성의광장, 서부여성회관 등의 기능 중복 문제가 제기돼 통폐합 논의가 있었지만 기관들 반발로 무산됐다. 남성들은 수백억 예산을 들여 여성 교육·취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여성 단체에 공간을 제공하는 여성 플라자를 짓는 것도 특혜라며 반발한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