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학과 등 산업 수요가 높은 대학 학과의 정원을 크게 늘리는 문제는 수도권 대학의 총 입학 정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손봐야 해결할 수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대학과 공장 등 여러 시설의 총량을 제한한 법이다. 단지 ‘교육 차원’에서만 접근해선 풀기 어려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가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가장 큰 대학 규제는 대학설립·운영규정 상 4대 요건(교지·교사·교원·수익용 기본재산) 규제인데, 이것도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들이 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4대 요건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4대 요건은 원래 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둔 것”이라며 “이제는 ‘캠퍼스 없는 대학’도 가능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교원 확보 규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완화하거나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5년 이후 대학구조개혁을 통해 대학 입학 정원을 5만1000명(수도권 1만2000명) 정도 줄였다. 이렇게 줄어든 정원을 활용해 대학들의 첨단학과 정원을 8000명(수도권 4000명) 늘려줬다. 이 가운데 반도체학과는 35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다.

대학들이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재정 문제다. 반도체학과는 특히 실험·실습 시설과 교수진을 확보하는 데 예산이 많이 드는데, 대학들은 14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재정난에 빠진 곳이 많다. 수도권 대학 한 관계자는 “대학은 파격적으로 연봉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은 기업 연구소로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반도체 등 산업 수요가 높은 학과의 교수진을 확보하는 것은 현재로선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 수요에 맞는 학과 정원을 늘리지 못한 것은 대학 내부의 밥그릇 싸움도 원인이다. 수요가 높은 학과 정원을 줄이고 신입생이 미달하는 학과 정원을 줄이려 해도 이해관계가 얽힌 교수들의 반발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학령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금 상황에서는 교육부의 정원 요건 완화와 함께 대학들의 자체 구조 조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