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 종이여권과 신형 전자여권

경기 용인시에 사는 직장인 박혜련(32)씨는 오는 8월 남편과 유럽 여행을 앞두고 지난 2일 여권을 새로 신청했다. 그런데 박씨가 신청한 여권은 작년 도입된 남색의 신형 전자 여권이 아니라, 기존의 녹색 종이 여권이다. 박씨는 “유효기간 10년짜리 신형 여권은 발급 비용이 5만원 안팎인데, 구형 여권은 유효기간이 약 5년에 1만5000원이었다”며 “유효기간이 절반인 점을 고려해도 비용이 저렴해 구형 여권을 신청했다”고 했다.

외교부가 지난 5월 말 신형 여권과 구형 여권을 병행 발급하기 시작하면서 구형 여권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외교부는 작년 12월 21일부터 신형 전자 여권을 전면 발급하기 시작했다. 표지가 남색이고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었고, 복제 가능성을 줄였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출국자가 급감해 여권 발급량이 크게 줄면서 기존 구형 여권 재고가 150만여 개나 남아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외교부는 지난달부터 재고가 떨어질 때까지 시민들이 신형과 구형 여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구형 여권이 예상보다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병행 발급 첫날인 지난달 31일 8000여 건의 신형 여권, 3500여 건의 녹색 여권 신청이 들어왔다. 여권을 신청한 사람의 30%가 구형 여권을 찾은 셈이다. 여권과 관계자는 “최근 여권 발급량이 회복되고 있는데, 구형 여권 발급 건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구형 여권의 장점은 가격이 싸다는 것. 유효기간이 최대 4년 11개월이지만 발급 수수료가 1만5000원이다. 신형 여권은 발급 수수료가 유효기간과 면수에 따라 4만2000~5만3000원이다. 이 때문에 유효 기간 5년 여권만 발급받을 수 있는 병역 의무자나 청소년들이 구형 여권을 많이 찾는다.

구형 여권이 ‘희귀품’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2일 구형 여권을 신청했다는 직장인 박모(28)씨는 “남색 여권의 겉면이 플라스틱이라 거부감이 들고, 기능 차이를 모르겠어서 녹색 여권을 신청했다”며 “이제 곧 죄다 남색 여권을 쓸 텐데, 오히려 옛날 여권이 희귀해지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