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언어치료 하고 싶은데 여기도 예약이 꽉 찼나요?”

경기 수원시에 사는 직장인 홍모(30)씨는 요즘 27개월짜리 아들이 다닐 병원을 찾고 있다. 올 초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또래보다 말이 꽤 늦게 트이고 있어서 언어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생각해서다. 예컨대 여태껏 ‘선생님’이란 단어를 끝까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선’이라는 발음만 겨우 한다고 했다. 상담을 갔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24개월 아이 기준 100개 정도 단어를 알아야 하는데, 아이가 20개 단어밖에 모른다”고 했다. 언어 치료를 한번 받아보려 병원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짧게는 넉달, 길게는 1년 정도 예약이 차 있어 속만 태우고 있다.

최근 의료계와 교육계 안팎에서는 코로나 시기 언어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2년여간 코로나 거리 두기를 하느라 이른바 ‘집콕’을 한 여파라고 분석한다. 대면 접촉이 줄어든 반면, 영상물 등을 시청하는 비중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말하기나 읽기 등에 어려움을 겪는 ‘말하기와 언어의 특정 발달장애’를 앓는 환자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말 1만2866명에서 2021년 1만4693명으로 늘었다. 이 중 90% 안팎이 10세 미만 유아나 어린이다.

유치원·초등학교에서도 이런 변화를 실감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기 고양시의 한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손모(24)씨는 “2019년 전에는 5세 정도면 친구와 싸우고 나서 ‘미안해’라고 표현할 줄 알았고, 사과·바나나 등 과일 사진과 한글 단어를 연결할 수 있는 게 보통이었다”면서 “2019년에는 한 반 15명 중 2~3명 수준만 이런 활동에 문제를 보였는데, 지금은 이런 아이들이 한 반에 10명 안팎”이라고 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유치원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의 발음할 때 입 모양을 볼 수 있도록 지난 4월부터 투명 마스크를 쓴다. 입 모양을 보면서 서로 대화해야 말이 빨리 는다는 점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가 적잖게 생긴다. 경기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은 “2019년 전에는 발표할 때 두 문장 이상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20명 반에 한두 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7~8명 정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논술 학원이나 관련 병원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유치원생부터 초3까지 학생을 받는 한 독서학원은 2020년 초만 해도 한 반을 5~6명 규모로 꾸렸는데 지금은 규모를 2~3배로 늘렸다. 이 학원 선생님은 “말이 늦을 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 생각을 글로 쓰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문의가 많아서 규모를 키운 것”이라고 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논술학원 대표 최지은(40)씨도 “학교에서 친구나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줄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언어 발달 문제를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IMF 이후 가정 해체 등으로 부모와 상호작용을 충분히 하지 못한 이들이 추후 언어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심한 수준”이라며 “지자체가 언어 장애 관련 전수조사를 하고 적기에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소울정신과 노원클리닉 박지인 원장은 “언어 발달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한데, 코로나를 겪으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고 핵가족 단위로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