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위도 이해하지만 지하철 타는 사람들도 다 서민들 아닙니까. 비도 많이 오는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적당히 합시다!”
30일 오후 5시쯤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장애인 권리 예산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일부 승객들 사이에서 이런 항의가 쏟아졌다. 전날 오후부터 이날까지 서울 등 중부지방에 지역별로 최대 300mm 안팎의 ‘물폭탄’이 떨어졌다. 도로 곳곳이 침수되면서 대중교통으로 시민들이 대거 몰려, 이날 출퇴근 시간 지하철과 버스는 평소에 비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서울엔 29일 오후 3시부터 이날 오후 7시까지 약 240mm의 비가 내려 시내 차로 곳곳이 통제됐다. 여기에 30일 퇴근 시간 무렵 지하철에서 전장연이 시위를 하면서 시민 불편이 더 커졌다. 전장연 측은 신용산역 기준 상·하행선 양측 방향으로 휠체어를 탄 채 각 역마다 내렸다가 다시 타는 방식으로 1시간 30분쯤 시위를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여파로 지하철 4호선 상행선이 총 1시간 10분, 하행선이 1시간 28분 각각 지연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6시쯤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200m쯤 줄을 늘어서 있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 승강장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다. 원래도 퇴근길에 출구 앞으로 10~20m 정도 줄이 생기곤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줄이 더 길어졌다고 한다. 여의도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한 30대 남성은 “평소 출퇴근 시간에도 여기가 많이 붐비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사람이 많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각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출구 앞에도 우산을 쓴 사람들이 120m쯤 줄을 섰다. 신분당선을 타고 퇴근하려던 최민지(29)씨는 “만나려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늦을 것 같으니, 아예 다음에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수원시 권선구 중고차 매매 단지 근처 한 노상 주차장에서는 비가 많이 내렸지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차량 수백 대가 보닛 근처까지 물에 잠겼다. 이곳에 판매용 차 20여 대를 세워 뒀다는 한 중고차 업체 대표는 “피해액이 5억원을 넘을 것 같다”고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도 생겼다. 이날 오후 1시 50분쯤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공사를 위해 파놓은 깊이 4m가량의 웅덩이에 물이 찼는데 거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공주에서는 무너진 처마 밑에 깔린 90대 여성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또 충남 서산, 경기 화성 등에서 총 2912ha(헥타르·1ha는 약 3000평)의 농작물 재배지가 침수됐다.
며칠째 내린 장맛비로 북한이 댐을 방류해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군 관계자는 “북한이 황강댐에서 최근 방류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 황강댐에서 방류를 하면 파주, 연천을 지나 임진강 수위에 영향을 주는데, 임진강 수위가 높아지면 김포 등 한강 하류 지역 수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아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강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임진강 최북단 민통선 필승교 수위 측정 결과 전날 오후 2시 30분 최고 6.45m를 기록했으며 30일 오후 4시엔 3.13m로 수위가 낮아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황강댐 수문 개방이 사실이라면 북측이 아무런 사전 통지를 하지 않은 것이 유감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