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방송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 장면. 변호사와 퇴사한 여직원들이 법원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에서 다룬 12화 ‘미르생명 구조조정’ 에피소드는 국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과거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우영우’에서는 대형 로펌 한바다와 주로 여성‧인권 사건을 다루는 류재숙 변호사가 미르생명의 희망퇴직 권고에 대한 재판으로 맞붙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미르생명은 회사 합병을 앞두고 상대적 생활 안정자라는 이유로 사내 부부 직원을 퇴직 대상자 0순위에 선정했다. 이로 인해 희망퇴직을 제안받고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 류재숙 변호사는 ‘사내 부부 직원 중 1인이 희망 퇴직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무급 휴직의 대상자가 된다’는 방침은 여성 직원들의 사직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은 미르생명의 변호를 맡은 한바다에 불리한 것처럼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판결은 한바다의 승리로 끝났다. 미르생명이 사내부부 중 희망퇴직 대상을 아내로만 제한한 것이 아니었고, 원고들이 여러 조건과 사정에 따라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점을 주요한 이유로 들었다.

◇2002년 11월 대법원 “부부 사원 명예퇴직, 합리적 해고”

이 에피소드는 1999년 벌어진 농협 구조조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농협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부부를 생활안정자로 보고 우선 퇴직자로 선정했다.

이에 여성 해고자 2명은 ‘경제적 충격이 덜한 부부 사원 중 여성 쪽이 명예퇴직을 안 할 경우 남편이 순환휴직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요구해 명예퇴직하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당시 사내부부 752쌍 중 91.5%가 여직원이 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기에 회사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사내 부부 중 한 명에게 사직을 강요한 곳들이 많았다. 드라마와 달리 변호인 16명은 퇴사한 여직원을 위한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있었다. 농협 측은 판‧검사 출신, 혹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인사‧노무 분야 변호사로 맞섰다.

2002년 7월 알리안츠제일생명이 사내부부 사원 중 한 명에게 사직을 강요한 건 부당해고라는 판결이 나왔다. 농협 사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4개월 전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농협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인력 감축이 필요했고, 더욱이 축협 등과의 통합을 앞두고 있어 인력감축이 절실히 필요했다”고 봤다. 이어 “노조 동의를 얻어 명예퇴직제와 순환명령 휴직제를 병행 시행한 사실과 농협이 원고들에게 명예퇴직을 강요했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춰 원심 판결은 정당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알리안츠제일생명과 결론이 다른 이유에 관해서는 “지난번 사건에서는 부부 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예퇴직을 강권했는데, 농협은 인력감축 방안으로 순환휴직제도를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들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번 사건에서는 명예퇴직이라는 명목하에 퇴직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 강제 해고를 단행했다”며 “농협은 명예퇴직 수당을 받고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등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므로 원고들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차선의 선택으로 자발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전문위원이었던 승재현 박사는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했던 IMF 시기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 기업이 똑같은 해고 방법을 취한다면 위법이 될 것”이라고 봤다. 승 박사는 “명예퇴직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3년치 월급 지급 등 선택지를 줬다면 정당 해고로 보는 해석이 많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