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직원 85명 가운데 38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지적장애도, 자폐성 장애도 있다. 2017년 문을 연 이후 퇴사한 장애 직원은 단 2명. 개인사정으로 그만뒀지 회사에서 내보내진 않았다. 장애 직원 모두 최저임금(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월 191만원) 이상을 받고, 6개월에 한번 20만~200만원 상당의 성과급도 받는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일하는 화장품회사 ‘동구밭’. 천연비누와 고체샴푸, 고체세제 등 친환경 생활용품을 주로 만든다. 설립 후 매년 2배씩 매출이 증가해 지난해엔 연매출 118억원을 달성했다. 장애인 고용도 6명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6배가 넘게 늘었다. 회사는 설립 때 세운 ‘장애인과 비장애인 반반 고용’이라는 목표를 향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직원 절반이 발달장애인... 모두가 근속 중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경기 하남시 지식산업센터 지하 3층에 위치한 동구밭 제 1공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맨 앞에 ‘최저임금 고시’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200여평 크기의 공장 내부는 공정별 공간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측량과 교반, 숙성, 가공, 포장 등 파트마다 5~6명씩 나눠져 분주하게 작업 중이었다. 코코넛·올리브 오일 등 원료를 측량하고, 섞는 교반작업은 일반 직원들이, 덩어리로 만들어진 비누를 자르고 성형·포장하는 일은 장애인들이 주로 한다. 모두가 하얀 방진복 차림이어서 겉모습만 봐선 누가 장애인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이곳 책임자 이중권 팀장은 “일하는 파트만 다를 뿐, 장애·비장애 구분이 전혀 없다”면서 “현장을 관리하는 나도 가끔 ‘저분이 장애가 있었나’ 하고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단순작업에 속하는 비누틀 세척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은지(가명·27)씨는 회사 설립 때부터 6년째 근무 중이다. 그간 여러 차례 담당업무가 바뀌었다.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잘못 뽑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회사는 한가지 업무를 둘로 나누거나, 별도의 공정을 추가로 만들어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맡긴다. “일이 재밌느냐”고 물으니 이씨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이은지씨는 아직도 일이 능숙하지는 않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다.
◇대학 동아리 활동이 화장품 기업으로
회사를 창업한 노순호(31) 대표는 “남들 눈에 부족해보이는 이은지님이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 회사 잘돼야 하는데…’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결코 초심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부족하고 어렵더라도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없애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밭은 노 대표가 대학시절 발달장애인들과 도시농업을 함께 하는 동아리 활동의 프로젝트 이름이었다. 2013년 서울 강동구 거주 발달장애인 5명과 대학생 6명이 30 여평 텃밭에서 쌈채소를 재배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대 1로, 서로 친구가 돼 농사를 배워보자는 게 계획이었다. 3년 만에 텃밭은 서울·경기지역 28곳으로 확대됐고, 참여 장애인도 400여명에 달했다. 2015년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농산물 사업을 구상했지만 대학생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장애인 친구들이 생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초창기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났고, 결국 노 대표 혼자 남았다.
◇플라스틱 버리고 친환경으로 ‘대박’
노 대표는 “도시농업 체험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에게는 당장의 직업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들이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농업을 포기하고 찾은 것이 비누였다. 비교적 공정이 쉽고,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아이템이었다. 유통기한이 긴 것도 장점이었다. 아이템은 골랐으니, 다음은 성공할 수 있느냐였다. 노 대표는 장애인 고용 기업이라고 지원금에 기대지 말자는 각오부터 다졌다. 동구밭은 설립 초기 ‘사회적기업’ 인증을 통해 법인세 감면 혜택과 장애인고용 장려금 월 1500만원 정도 받는 게 전부다.
2017년 3월 첫 납품에 성공했다. 중소화장품 회사 2~3곳의 OEM 생산으로 500만~6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노 대표는 “그때만해도 고객사가 만족할만한 좋은 비누를 만들자는 게 목표이자 전략이었다”고 했다. 이후 상품을 다각화를 시도했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야 한다는 게 평소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고체 설거지 세제와 고체 샴푸, 고체 린스가 대박을 터뜨렸다. 액체를 고체로 바꾸면서 플라스틱 용기가 사라졌고, 화학제품이 아닌 친환경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됐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바람도, 최근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 열풍도 한몫했다. 지금은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표 화장품 회사와 워커힐 등 유명 호텔에 납품도 하고, ‘동구밭’이라는 브랜드로 대형마켓이나 TV홈쇼핑에서 직접 판매도 한다. 생산 공장도 3곳으로 늘었다. 올해 안으로 첫 수출, 첫 외부 투자도 성사될 전망이다.
노 대표가 꿈꾸던 ‘발달장애인들이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만들어졌지만, 그는 “고민도 많아진다”고 했다. 회사 매출이 커지고, 외부 투자가 늘어나면 ‘이익’과 ‘흑자’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장애인 고용’이 약점이 될 수 있잖아요.사실 사람 대신 기계를 쓰면 생산단가가 확 떨어지거든요. ‘장애인 고용을 위해 만든 회사’라는 초심을 어떻게 잃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젊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장애인 고용이 목적인 회사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장애인 고용을 줄인다는 건 말이 안되죠”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마치 다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