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 이틀 전 스토커 전 모 씨(31)의 칼에 목숨을 잃은 20대 여성 역무원 추모공간에 한 30대 여성이 머뭇머뭇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조심스레 놓더니, 포스트잇 한 장을 벽에 붙였다.
그는 피해자와 같은 서울교통공사 소속 역무원 이모(32)씨. “야간 순찰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들렀어요. 피해자와 다른 역에서 근무해 안면은 없지만 같은 패턴으로, 같은 업무를 하는 선배로서 이런 일을 막지 못해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이씨는 “이런 비극은 역무원 누구에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하철 역은 야간 당직자가 총 2명인 경우가 많아 한 명은 사무실, 한 명은 순찰을 돈다. 서울교통공사 근무 매뉴얼엔 ‘2인 1조 순찰’ 규정 자체가 없다. 규모와 상관없이 야간 순찰은 남자든, 여자든 혼자 도는 게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호신용 장비는 없다. 수신호용 경광봉과 무전기 달랑 들고 순찰을 돈다고 했다.
심야 시간대 순찰근무자는 노숙자나 주취자와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여성 역무원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수시로 발생한다고 한다. 이씨는 “일상적으로 막말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옆을 지켜줄 동료도, 스스로 보호할 수단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역무원들은 남녀 불문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지금까지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역내 순찰이) 사실상 1인 근무로 운영돼 이번 같은 위급 상황에서 대처가 어렵다”며 “2인 1조 근무 시스템을 매뉴얼화하겠다”고 밝혔다.
신당역에는 피해 역무원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이지형(26)씨는 출근길에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와 “너무 안타깝다” “안타까워서 어떡해” 하며 울먹였다. 그는 “피해자와 같은 여성, 비슷한 또래로서 뉴스를 접한 뒤 무서운 마음이 컸다”며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 중구에 사는 박모(67)씨는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지, 왜 막지 못했는지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한다”며 “일주일에 5번 이상은 신당역을 이용하는데, 공용 화장실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오전 역 안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국화와 커피, 쿠키 등 피해 역무원을 추모하는 물건들이 하나 둘 쌓였다. 벽에는 이미 추모글이 적힌 포스트잇 40여 개가 붙어 있었다. 역 출입구에도 시민들이 만든 추모 공간이 따로 마련돼 지나는 시민들이 헌화를 이어가고 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지난 14일 오후 9시쯤 발생했다. 순찰을 하러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던 역무원 A씨가 뒤따라온 동료 역무원 전모(28)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전씨는 A씨의 입사 동기로 2018년 말부터 그를 따라다니며 스토킹과 협박을 해오다 재판에 넘겨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