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4년간 근무한 개발자 김모(33)씨는 올해 초 서울 마포구의 한 사진관에서 20만원짜리 얼굴 사진을 찍었다. 2만~3만원이면 찍을 수 있는 사진에 비싼 값을 지불한 이유는 스타트업 이직을 준비하면서 ‘부드러운 인상을 강조하는 프로필 사진을 찍으라’는 헤드헌터의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날 그는 한 시간의 촬영과 보정 작업 끝에 갈색 배경 앞에서 비스듬히 앉아 웃는 사진을 받았다. 몇 달 뒤 그는 한 스타트업의 중간 관리자로 취직했다.
구직자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10만~40만원의 고가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다. 채용 플랫폼에 사진을 내걸고 상시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회사 업무에서 소셜미디어(슬랙·카카오톡)·화상회의(줌) 활용이 잦아지면서 ‘화면 속 얼굴’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 증명서·이력서에 붙이기 위해 찍었던 정형화된 증명사진과 달리 고가 프로필 사진은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과 자세·표정이 특징이다. 서울 연세대학교 3학년 이모(22)씨는 “인턴 지원을 앞둔 시점부터 10만원 이상을 들여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수십만원을 들여 야외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고가 프로필 사진은 한국만의 트렌드가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 시각) “완벽한 프로필 사진에 대한 갈망이 커진 구직자들은 1000달러(약 140만원) 이상을 들여 사진을 찍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국내에선 고가 프로필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관도 늘고 있다. 서울의 유명 사진관인 ‘그레이그라피’의 프로필 사진 촬영 비용은 20만~40만원으로, 촬영 전에 별도 상담을 통해 의상·헤어스타일·콘셉트를 정한다. 전힘찬 그레이그라피 대표는 “3~4년 전에는 소장용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고객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구직용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분들이 많다”면서 “요즘에는 로펌 취업을 준비하는 변호사가 주고객”이라고 했다. 전국 10곳의 지점을 둔 사진관 ‘시현하다’는 전형적인 흰색 배경 대신 구직자에게 어울리는 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경력이 많은 사진가에게 맡기려면 11만~16만원을 내야 하지만 9월 예약은 대부분 찼다.
고가 프로필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기존 증명사진의 문법도 바뀌고 있다. 어깨까지 겨우 나오던 사진에서 상반신까지 담는 사진을 찍고, 링크드인·카카오톡 프로필에 어울리는 ‘전신샷’도 인기다. 남자 구직자에게는 넥타이가, 여자에겐 올림머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고 무표정 대신 활짝 웃는 표정을 짓는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 관계자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증명사진 규격이 완화되고, 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 등의 자연스러운 이력서 사진이 주목받으면서 구직자들의 얼굴 사진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도 직원들의 개성 있는 프로필 사진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FT는 스타트업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직원들의 얼굴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응대가 불가피해지면서 고객·투자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직원 사진들을 내걸어 친근감을 얻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직원 회식 대신 프로필 사진 촬영을 팀워크를 다지는 활동으로 삼기도 한다. 직장인 임모(31)씨는 “프로필 사진은 소셜미디어·화상회의 등에서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비싸도 괜찮다는 게 요즘 직장인들의 인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