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나가’상 수상자입니다. 유○○님!”
지난 5월19일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개발원 대강당에서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이렇게 외쳤다. 이날은 ‘시설거주장애인의 탈시설 성과 공유회’가 열린 날이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이하 ‘시설‘)에서 보호·관리를 받던 장애인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 뒤, ‘나가서도 잘 산다’는 걸 과시하는 성격의 행사였다.
호명(呼名)에도 대답이 나오지 않자, 사회자가 다시 불렀다.
“○○님?” “○○씨?”
당연히 답은 없었다. 단상에서 휠체어에 기대 누워 수상을 기다리던 유모(38·여)씨는 말을 할 수도,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이었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도 의료용 튜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가족도 없는 그는 24시간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던 시설을 2년 전 떠나 지금까지 집에서 혼자 산다. 그게 이들이 말하는 ‘탈시설’이다.
유씨로부터 대답을 듣지 못한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다.
“○○씨의 이 표정을 잘 보셔야 하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유씨 곁에 선 활동지원사에게 물었다.
“지원사님이 보시기에 ○○씨에게 이 상이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지원사는 객석에서 밝은 목소리로 “네”라고 소리쳤다. 유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멍하니 천장만 응시할 뿐이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것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유씨는 프리웰 산하 시설 ‘향유의집’에서 머물다 2년 전 퇴소했다. 프리웰엔 이제껏 다수의 ‘전장연’ 관련 인사가 이사진을 구성해 왔다. 지하철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박경석 대표도 프리웰 이사 출신이다.
시설에 살던 장애인이 ‘탈시설’하면 상주 의료진 대신 외부 ‘지원사’의 방문 도움을 받게 된다. 정부는 이런 지원사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데, 그 중 약 25%는 지원사를 관리하는 ‘생활지원센터’가 받는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상당수의 생활지원센터 운영진은 전장연 관련 단체 출신이다. 전장연은 탈시설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흥 부자상’ ‘흥미진진상’ 등 유씨 같은 수상자가 여럿 나왔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법하게 퇴소된 장애인 중엔 튜브 섭식 등을 해야 해서 1인 거주가 어려운 ‘최중증장애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5일 최 의원이 말한 그 최중증장애인이 바로 유씨였다. 유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탈시설했을까.
국회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유씨는 2020년 9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나왔다. 유씨는 말은 커녕 손발도 자유롭게 쓸 수 없고 음식도 씹어 삼키지 못한다. 가족도 없다. 본인 동의는 물론 법이 정한 법적대리인의 ‘퇴소동의서’도 없었다. 이런 경우 시설에서 내보내면 안 된다. 그런데도 시설 측은 관할 양천구청의 ‘심의’를 받았다며 유씨를 내보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향유의집 내부 공익제보자 박대성(47)씨는 인권위에 ‘유씨 등 10여명에게 시설이 저지르고 있는 강제 탈시설과 인권 침해를 막아 달라’는 민원을 2019년 12월과 2020년 8월 두 차례 제기한 바 있다. 인권위는 2건 모두 기각했다.
인권위는 유씨 등 퇴소자들이 ‘비자발적으로 나갔고, 동의서도 직접 작성한 게 아니었다’는 등의 상황을 확인하고도 “탈시설은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 등의 이유를 댔다. 올해 7월이 돼서야 인권위의 상급기관인 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는 ‘제기된 민원 2건 가운데 1건의 일부 부적절한 퇴소에 대해서만 인권위가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씨와 김모(58)씨, 이모(51)씨, 이모(53)씨 등 본인이나 법적대리인의 동의 없이 양천구청의 심의로 탈시설한 5인에 대해선 여전히 인권위와 같이 ‘문제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지난해 6월 이미 서울행정법원이 “양천구청의 심의로 장애인들의 퇴소가 이뤄진 게 아니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양천구청 역시 “장애인들의 퇴소를 결정한 건 시설 측이지 우리의 심의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유씨 등이 퇴소한 건 2020년 9월24일이었고, 양천구청의 승인이 이뤄진 건 같은 해 11월24일이었다. 선 탈시설 후 구색 맞추기 식의 심의 요청이 이뤄졌으며, 법원과 양천구청도 심의가 장애인의 퇴소를 결정 짓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행심위는 “문제 없다”고만 했다.
◇초법적 지침 만들더니 우왕좌왕 보건복지부
인권위와 행심위의 판단 근거는 ‘보건복지부 지침’이었다. 복지부는 2020년 펴낸 ‘장애인복지 사업안내’라는 지침엔 “법적대리인 부재 등으로 보호자 동의서 제출이 어렵고, 장애인의 의사능력이 부족하면 ‘지자체·기초자치단체 담당자’가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 안건으로 상정하고 심의를 거쳐 신중한 판단 하에 퇴소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초법적 지침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 의원은 “법은 당사자나 법적대리인 동의를 필수로 규정하는데, 복지부의 지침이 이를 넘어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장애인이 탈시설 할 땐 본인 혹은 법적대리인의 동의가 필수고, 법적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장애인의 후견인 △배우자 혹은 부양의무자인 1촌의 직계혈족 △장애인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지자체장·기초자치단체장이 지명한 사람뿐이다.
강제 탈시설의 단초를 제공한 복지부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탈시설 지원 실무부서인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지자체·기초자치단체의 심의 결과가 장애인이나 법적대리인의 퇴소 동의를 갈음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향유의집과 인권위, 행심위의 판단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안내 지침을 직접 만든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지침이 법과 시행령을 넘어설 순 없다”면서도 “법과 시행령은 추상적이어서 복지부 사업안내를 따라 탈시설을 진행한 향유의집과 인권위·행심위의 판단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서 최 의원은 복지부에 이와 관련된 인권 침해 사례 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 사례를 보고 받은 바 있다. 이런 인권 침해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하겠다”며 “추진 과정에서 (장애인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퇴소가 이뤄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해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