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8시쯤 경기 의왕시 고천동 의왕 톨게이트 버스정류장에 선 1009번 광역 버스에는 이미 승객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다. 수원에서 성남 판교, 서울 잠실 등지로 출근하려는 사람들이다. 45개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고 가운데 통로엔 25명이 서 있었다. 입석 승객들은 길이 8m, 폭 45㎝쯤인 좁은 직사각형 통로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이었다. 도중에 한 정류장에서 5명 정도의 승객이 더 올라탔다. 버스 기사가 뒤쪽 승객들을 향해 “안으로 들어가 달라”고 크게 소리치자 통로에 선 승객들은 몸과 몸을 더욱 밀착했다. 일부 승객은 버스 입구 부근 계단과 문까지 매달려 서있어야 했다. 급정거에 차량이 휘청일 때마다 통로 안 승객들은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한쪽으로 우르르 쏠렸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이렇게 매일 아침 ‘압사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과밀(過密)이 일상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특정 공간에 1㎡당 5명이 넘게 모이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작은 충격에도 한쪽으로 쉽게 쓰러져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이날 오전 본지 기자가 탄 버스 내부 밀집도는 1㎡당 6.8명에 달했다. 가방이나 짐을 들고 버스·지하철에 올라, 가슴 앞쪽으로 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인 시민들은 버스나 지하철의 밀도가 이보다 훨씬 더 높다고 느낀다. 두꺼운 옷을 입는 겨울에는 인파로 인한 실내 압력이 더 커진다. 경기에서 서울로 출퇴근, 등하교하는 인원은 하루 125만명. 이만한 인원이 매일 위태로운 길을 오가지만,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런 위험에 대해서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오전 7시 45분 서울 동작구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에서 올라탄 급행 지하철은 출근 인파로 이미 만원이었다. 플랫폼에는 승강장 출입문 앞마다 20여 명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량진역에서 출발한 지 10분쯤 뒤 신논현역을 지날 때쯤부터는 열차 안에 선 사람들의 몸이 바짝 붙었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해지고 숨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때 본지 기자가 탄 열차 한 칸 승객은 약 185명. 사람들은 역에 내릴 때마다 “나갑니다” “비켜주세요”라고 외치며 앞에 선 사람을 강하게 밀쳐야 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도 사정이 비슷했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사람들이 이미 가득 찬 열차에 올라타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전 8시 30분쯤엔 한 여성이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가 전화기를 줍느라 허리를 숙였는데, 바로 옆에 선 사람들에게 치여 바닥에 고꾸라졌다. 손잡이가 닿지 않는 키 작은 사람들은 인파 속에서 떠다니듯 계속 휘청거렸다. 한 시민은 “지하철을 타다가 숨이 막혀서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좁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과밀(過密)이 일상이다. 특정 공간에 1㎡당 5명이 넘게 있으면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지하철은 이미 위험 수위다. 이날 9호선의 경우 내부 밀집도가 1㎡당 4.4명에 달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시민들은 매일 버스와 지하철에서 과밀한 일상을 살며,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아 밀도가 높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높은 밀집도의 위험성에 대해 경시하는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분석한다. 참사 전인 지난 26일 경찰과 인근 상인, 용산구청 등이 모여 핼러윈 관련 회의를 열면서 “인파가 몰리면 차가 밀린다” “쓰레기가 늘어난다” 등의 우려만 했던 것이 이런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막상 지난 29일 참사가 났을 때는 폭 3.2m 골목에 사람들이 겹겹이 엉키면서 156명이 압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고가 난 골목의 18.24㎡(약 5.5평) 넓이 공간에 300여 명이 넘어지거나 포개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당시 밀집도는 1㎡당 16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 등 사람이 과밀한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둔감해진 것”이라며 “어디서든 밀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밀집도가 높은 상황은 출퇴근길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 퍼져 있다. 과거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 경기 때 대규모 인원이 모여 응원을 하는 것은 물론, 서울 광화문 근처 세종대로에서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가 매주 벌어진다. 이번 참사가 핼러윈 때 일어난 것처럼, 어린이날에 놀이공원 등에 사람이 몰리거나 크리스마스 등에 번화가가 인파로 넘치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장소로도 수도권만의 일은 아니다. 문화관광체육부에 따르면 각지에서 10만명 이상 인파가 모이는 규모의 축제는 최근 수년간 연간 70건을 웃돌았다. 이번 핼러윈 참사처럼 주최자나 단체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행사까지 포함하면 연간 100건에 달한다고 한다. 거기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는 볼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해 기록을 남기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책 매뉴얼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